"탈북 전날밤에도 한국 드라마 봤다, 北 청년들 김정은에 충성 안해"

20대 탈북민, 日 언론 인터뷰
“한국 드라마가 유일한 위안”

지난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서 청년들이 제품 판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탈북민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김정은에게 충성심은 눈곱만큼도 없다”며 “당국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탈북해 서울에서 생활 중인 A(24)씨는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 북한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A씨는 지난 26,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 및 강연회에 참석한 후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던 A씨는 북한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지난해 10월 탈북했다. 그는 평양의 한 대학에서 탁구 선수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북한 당국이 남한 문화에 대한 통제를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길을 걸을 때마다 경찰에게 불려 세워져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서 ‘오빠’ 같은 한국식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확인당했다”며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청년들에 대한 공개 재판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9월 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들을 수갑 채워 체포하고, 가족 신상까지 공개하며 비판하는 영상이 한국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체포하는 교육 영상이 지난 9월 공개됐다. KBS 캡처

이 같은 단속에도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A씨도 14세부터 한국 드라마를 접해 ‘겨울연가’ ‘상속자들’ ‘이태원 클라쓰’ 등 유명한 인기 작품은 모두 시청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로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꼽은 그는 “탈북 전날까지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며 “힘든 삶을 버티기 위한 유일한 위안이었던 드라마를 보는 일은 죽어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A씨는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도 전했다. A씨에 따르면 경제난 탓에 북한 당국의 배급은 이미 끊긴 지 오래이고 주민들은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종합시장에서 생활필수품을 구한다. A씨는 “북한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라며 “대학에서도 교수에게 뇌물을 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여기며 도우려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 가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고 덧붙였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