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통상 양육보다 많은 희생, 사정 참작"
"A씨 가정의 사정은 딱하지만, 부모로서 자녀의 삶을 앗아가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중증장애 아들을 39년간 돌보다 지쳐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가족과 장애인 단체 등이 잇따라 선처를 호소했고, 법원 역시 이례적인 사건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살인 행위에 대한 정당성까지 인정되지는 않았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 어재원)는 25일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재판에 넘겨진 A(65)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은 앞서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39년 넘도록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보살폈고,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통상의 자녀 양육보다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인간 생명은 존엄한 가치로 비록 피해자가 중증장애에다 삶에 대해 비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고 해도 부모로서 자녀의 처지를 비관해 삶을 앗아가는 것은 경위를 불문하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가 오랜 시간을 아들에게 헌신해온 A씨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자책하고 반성하고 있고,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가장 가혹한 형벌일 것"이라며 "B씨의 모친과 동생이 A씨의 노고를 강조하며 선처를 탄원했고, 장애인 단체들도 선처를 호소한 점 등 제반 사정을 깊이 고민하고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해 10월 24일 오후 7시 20분쯤 대구 남구 이천동 아파트 욕실에서 아들(당시 39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1급 뇌병변 장애를 앓은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40년 동안 식사와 목욕, 용변 처리 등을 도맡았다. A씨의 아내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나 A씨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들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데다 나이가 들자 간병에 부담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교통사고로 다리 근육 파열과 발가락이 절단됐는데, 지난해 8월 보험사로부터 '더 이상 치료비를 줄 수 없다'는 통보에 소송을 진행하다 우울증이 겹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당시 A씨는 심신미약 상태는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술과 약물을 복용한 뒤 아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신감정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A씨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 가족, 환경에 대한 관심은 물론 정신건강 치료도 필요하다는 소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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