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실존적 위협" 개도국들 필사적
유럽 국가들과 함께 '강한 협약' 지지하나
산유국들 반발에 5번 회의에도 결론 못 내
산유국 지연 전략에 만장일치제 회의론도
"우리 미크로네시아 경제 80%가 어업에 의존하지만, 물고기는 잘 안 잡히고 플라스틱만 바다에 범람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중 (미세)플라스틱 먹은 물고기를 먹고 싶은 분 있나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정부 간 협상 회의를 찾은 서태평양 섬나라 연합체 '미크로네시아' 대표의 말)
2022년 3월 시작된 '유엔 플라스틱 협약' 협상이 마지막 회의로 예정됐던 부산의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에서 결실을 볼지 국제사회의 기대를 모았지만, 끝내 국가 간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2일 빈손으로 폐막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내년 중 INC5.2를 열어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당장 플라스틱 오염으로 '실존적 위협'에 놓인 개발도상국 대표단들의 얼굴에는 '협약 무산'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이 역력했다.
'생산 감축' 협약 지지 100개국 넘지만...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해 2일 오전 3시까지 여드레 동안 이어진 INC5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국가들은 파나마, 멕시코, 르완다, 피지 등 '남반구'(Global South) 개도국들이었다. 이들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유해 플라스틱 제품·화학물질 퇴출' 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든든한 우방세력인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한 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여론전을 펼쳤다.
플라스틱 협약에 참여하는 전 세계 170여 개국 중 이들 개도국과 EU를 합하면 과반수에 달하고, 이에 통상 '야심찬 목표'를 가진 제안서에도 100개국 안팎이 동참하는 추세다. 반면 대척점에 선 이른바 '유사입장그룹(LMG·Like minded Group)'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바레인, 러시아, 중국 등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국 등 10개국 안팎에 불과하다. 다만 내심 '약한 협약'을 원하는 국가들이 30~40개국은 된다는 분석도 있다.
나라 수로는 '강한 협약'을 지지하는 세력이 훨씬 많지만, 지난 5차례 INC 동안 협상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도리어 소수파인 LMG였다. 만장일치와 합의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국제 협약 특성상, 아무리 소수여도 '생산 감축' 등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서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듭 회의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협약 문안이나 용어 정의를 일일이 따지면서 괄호(합의가 안 된 내용을 의미)를 늘려왔다. 이에 국제환경단체와 다수파 국가를 중심으로 "괄호에서 벗어나야 플라스틱에서 벗어날 수 있다"(피지 대표)고 반발하고 있다.
플라스틱 심각성 비해 협상은 지지부진
'소수파에 의해 다수파가 끌려다니는' 의사결정 구조 탓에 5차례 INC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지 못하자, 만장일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에이릭 린데뷔에르그 세계자연기금(WWF)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들이 플라스틱 생산·소비로 이익을 얻는 국가들에 의해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노력하는 대다수 국가는 '의지가 있는 국가들이 참여하는 협약'을 채택하거나 투표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5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두세 배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에 비해,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협상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도 많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UNFCCC)을 체결하고도, 구체적인 목표와 글로벌 거버넌스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야 정한 '기후위기 대응체제'의 과오를 플라스틱 문제에서도 반복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