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인평화회의 늑장 입장문
'비판' 피한 미온적 입장 표명 도마
"혼돈 바로잡을 메시지로 역부족"
국내 7대 종교 수장단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 뒤늦게 성명을 발표해 빈축을 사고 있다. 성명에는 계엄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한 원론적인 입장만 담겼다.
KCRP는 5일 낸 성명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구분했다"며 "신속한 국민 참여와 국회의 결단은 민주주의가 체화된 성숙함을 발견하게 했다"고 밝혔다. KCRP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국내 7대 종단의 수장이 모여 있는 종교 협의체다.
KCRP는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에 깊이 공감하며 정의롭고 안전한 평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며 "대한민국에서 정치 권력은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와 사회적 단합과 평화 구현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①혼란 속에서 차분히 사회를 지탱해준 국민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②정치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달라 ③종교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길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덧붙였다.
"윤대통령 책임져야" 문구에는 이견
종교계에 따르면 7개 종단은 전날 오전부터 공동 성명 발표를 위한 논의에 나섰다. 밤늦은 시간까지 논의가 이어졌지만 성명서 문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각 종단 대표들의 견해 차이로 인해 초안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하루를 넘겨 원론적인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입장문만 내놨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논의 과정에서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한 각 종단의 견해차가 드러났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비판 입장을 밝힌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제외한 나머지 종단 대표들이 윤 대통령을 직접 규탄하거나 책임 소재를 따지는 문구를 넣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한다'는 일반론적인 언급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종교계 인사들은 끝까지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구를 입장문에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KCRP에 따르면 수장단의 공동 선언문 채택은 만장일치제로 이뤄져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 한 종교계 인사는 "사회적으로 큰 혼돈을 야기한 사안에 대해 선명한 메시지를 줘야 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것"이라며 "지나치게 원론적인 문구만 넣으면서 국민 일반 정서에도 미치지 못하는 입장문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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