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잔인했던 군인 틈바구니에서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에 대한 실증적 얘기를 이렇게 전한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후 인터뷰에서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3일 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은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등 280여 명의 최정예 군인이었다고 한다. 특히 707특임단은 유사시 북 수뇌부 제거 등 극비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다. 그럼에도 계엄군이라기엔, 또 최정예 부대원이라기엔 소극적 모습이 여럿 포착됐다. 밀쳐진 시민이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감싸안아줬고, 스크럼 대치가 위험해지자 “하지 마, 뒤로 와”를 외쳤다. 의원들의 월담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특히 계엄 해제 후 한 청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인 뒤 철수하는 영상은 큰 울림을 줬다. 댓글창엔 ‘저 군인도 똑같은 국민이고 피해자’라는 글들이 이어졌다. 해석은 분분하다. 지휘계층 어딘가에서 의도적 항명이 있었다거나, 명확한 임무 지시 없이 긴급 투입됐기 때문이라거나, 계엄군의 일거수일투족이 휴대전화 영상으로 실시간 전파되는 걸 의식해서라거나.
□무엇보다 “군인으로서 합법적 명령을 안 따를 순 없고 계엄은 수긍하기 어려운 MZ군인들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풍경”이라는 해석이 와닿는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군대를 갔는데 난데없이 계엄군이 되라는 상관 명령에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겠는가. 현장에 투입됐던 특전사 대원 일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러 뛰지도 않고 걸어다녔다" "놀란 시민들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군인이 왜 2024년에도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범죄적 계엄의 도구가 돼야 하느냐'고 정권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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