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② 채 해병 순직 수사 외압
③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④군 동원한 비상계엄 선포
“윤석열이 청와대 대신 여길 집무실로 쓴다네. 우리는 쫓겨나는 거지.”
2022년 3월 15일 오후 7시 10분, 지금은 대통령실 앞마당이 돼 버렸지만 당시는 국방부 땅이었던 연병장에서 한 30대 남성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선된 지 1주일도 안 된 예비 군통수권자가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용산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날이었다. 바깥 사람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웃어넘겼지만 국방부 안에선 그때 이미 불길한 결말을 직감했다. 집무실 이전의 이유가 ‘점괘’로 알려진 이상, 청와대로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선 토론회 당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대통령이었다. 두 달 뒤 취임식까지 새 집무실을 지을 수도 없는데다 서울 시내에서 ‘경호’와 ‘넓은 부지’가 보장되는 곳은 용산 국방부가 유일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로 옮기고, 국방부는 도보 1분 거리인 바로 옆 합동참모본부 청사로 이동하기로 결정나면서 대통령과 군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됐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군부를 휘하에 두고 본인 안위를 위해 군을 동원하거나 권한을 남용할 것이라는 당시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군 미필인 그의 곁엔 충암고 1년 선배이자 3성 장군 출신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있었다.
국방부가 하루아침에 대통령에게 청사를 내줘야 했던 집무실 이전부터 △채 해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이어 지난 3일 ‘계엄의 밤’까지 윤 대통령과 용산 국방부의 질긴 악연을 돌아봤다.
①악연의 시작, 안보심장부 해체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부팀장이었던 김용현 전 장관이 용산을 후보지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된 ‘취임 전 집무실 이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시작부터 대혼란을 초래했다. 대선 승리 나흘 만인 2022년 3월 14일, 국방부에 집무실 이전 계획을 통보한 인수위는 “3월 31일까지 짐을 싸서 나가라”고 못 박았다.
이에 국방부는 “영내에 16개 부대·6,500명이 근무해 그 시한에 새 가용 공간을 모두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4월에 청사에서 한미연합훈련이 있다” “사다리차를 못 대는 건물 특성상 20일 동안 24시간 풀가동해야 짐을 뺄 수 있다”고 항변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보안이 생명인 국방부 청사를 용역 직원인지 경호처 직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복장을 한 인사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국방부 이전 후보지는 정부과천청사부터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까지 하루에도 수차례 바뀌었다. 급기야 당선자 신분으로 청와대 이전 기자회견에 직접 나선 윤 대통령은 조감도를 꺼내 보이며 군사기밀인 국방부와 합참의 지하벙커 위치까지 공개해 버렸다.
국방부가 적에게 쫓기듯 보안문서를 파쇄기에 돌리며 이삿짐을 싼 첫날인 4월 7일, 윤 대통령은 주한미군 평택기지를 방문해 한미 장병을 격려하고 있었다. 인수위는 “대통령 당선자가 주한미군 일선 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예비 군통수권자가 국군부대보다 미군부대를 먼저 찾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날벼락을 맞은 듯, 하루아침에 청사를 내준 국방부는 5차례에 걸쳐 바로 옆 합참과 국방부 별관, 후암동 옛 방위사업청 건물, 정부과천청사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국방부 일부 기능이 이전된 합참의 일부 부서 역시 연쇄이동이 불가피했다. 합참을 장기적으로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로 이전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한민국 안보심장부는 그렇게 해체됐다.
대통령과 경호처장의 새 관저가 필요했기에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은 물론 육군총장 공관도 비워야 했다. 경호처 직원에게 빼앗길 뻔한 용산 군인 아파트는 막판에 가까스로 지켜냈다.
② ‘尹 격노’로 시작된 채 해병 순직 수사 외압
지난해 여름 국방부와 해병대를 뒤집어놓은 ‘채 해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은 윤 대통령의 ‘격노’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해 7월 경북 예천 지역 폭우 피해 복구 지원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해병의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사죄를 해도 모자랐던 그 시점, 사건은 엉뚱한 국면으로 흘렀다.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 없이 해병대원들을 복구 작업에 투입시킨 의혹을 받는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이 아닌, 해당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수사단장(대령)이 항명 혐의로 보직 해임된 것이다.
같은 달 30일 ‘임 사단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넘긴다’는 내용의 수사 보고서를 박 대령이 발표하자 이에 사인까지 했던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은 돌연 다음날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예정된 언론 브리핑과 국회 보고도 모두 취소됐다. 갑자기 ‘1사단장의 혐의를 기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이 장관의 황당한 요구에 박 대령은 애초 보고대로 경북경찰청에 해당 사건을 이첩했고, 이에 분노한 국방부가 박 대령에게 항명죄를 씌우며 응징한 것이다.
이 같은 비상식적인 행보를 설명하는 유일한 단어는 ‘VIP(윤 대통령) 격노설’이었다. 박 대령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제게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방비서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했다’고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던 ‘임성근 구하기’의 마지막 퍼즐은 김건희 여사로 향했다. 김 여사와 친분이 있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사단장 구명 로비에 나선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채 해병 순직사건의 책임을 지고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내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이야기하겠다”고 언급한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결국 소신을 지켜 수사했던 영관급 장교는 나홀로 국방부와 맞서 싸우고 해당 사건에 연루된 국방부 고위 간부들은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는 중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수사 대상자인 이 전 장관을 황급히 차관보급인 호주 대사로 임명하면서 그는 도망자를 뜻하는 ‘런종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군 검찰은 지난달 21일 결심 공판에서 박 대령에게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했다.
③홍범도함으로 번진 흉상 이전 논란
지난해 8월 윤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에 멀쩡히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까지 건드렸다.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공산주의 이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기울어진 역사관은 안보 부처인 국방부와 육·해군을 무리한 역사논쟁에 끌어들였다. 옮길 곳도 확정하지 않고 육사 내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부터 이전하겠다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1주일에 세 차례 있는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선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한 달 넘게 기자단과 당국자 사이에 설전에 가까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흉상 이전 논란은 해군이 운용하는 손원일급 잠수함 7번함인 ‘홍범도함’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이어 이종섭 당시 장관까지 홍범도함 명칭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전례를 찾기 어려운 함명 변경 추진에 해군은 반발했고 해군 공보 담당자 역시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해군은 홍범도함 함명 제정 변경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④절정이 된 ‘계엄의 밤’ 그리고 헤어질 결심
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심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난 3일 ‘계엄의 밤’으로 국방부와의 악연은 절정에 달했다.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 내부로 돌격하는 모습은 군 관계자들도 경악할 만한 충격적인 모습이어서다. 국민이 느낀 공포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현재 군복을 입은 다수는 선배들이 저지른 12·12쿠데타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다. 45년 전 쿠데타에 이어 3일 밤 비상계엄도 이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가 됐다.
무엇보다 대통령실이 국방부를 휘하에 두고 제멋대로 통제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여실히 드러났다. 올 초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한남동 공관에 국군방첩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특수전사령관을 소환해 비밀리 회동한 것이 계엄 사전정지 작업으로 읽히고 있어서다. 특히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밤, 집무실 바로 옆 합참 지휘통제실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도 이제 악연을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 비상계엄 주동자로 사의를 표명하고 면직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대신해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김선호 국방차관은 “국민들께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개인적인 입장에서 참담하고 매우 슬프고 괴롭다”며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 역시 육군 3성 장군 출신이다.
6일에는 브리핑을 통해 “2차 계엄 발령에 관한 (윤 대통령의) 요구가 있더라도 국방부와 합참은 이를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는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이와 함께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된 수방·방첩·특전사령관에 대한 직무를 정지시켰고 국방부 검찰단은 이들을 포함해 수사 대상에 오른 현역 군인 10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김 차관은 또 각 군과 국방부 직할부대, 기관에 비상계엄 관련 원본 자료는 보관하고, 폐기·은폐·조작 행위를 일절 금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6시간 천하로 끝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스스로를 ‘식물 대통령’으로 만드는 ‘셀프 쿠데타’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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