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 열리는 스톡홀름서 기자회견
수상 후 취재진 첫 만남서 '尹 비상계엄' 비판
도서 검열 대해서도 '우려'... '문학의 힘' 강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충격을 받았다"는 말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했다.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이 회견은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한 작가가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는 이어 "바라건대 무력이나 어떤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또 자신의 소설 '채식주의자' 등에 대한 검열을 거론하며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공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성숙한 태도를 갖는다"고도 비판했다.
한강 작가가 6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스톡홀름=신은별 특파원
尹 비상계엄 거론하며... "시민들 용기, 느꼈다"
한 작가의 기자회견은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온 80여 매체가 참석한 가운데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질문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이었다. 한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해당 질문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일찌감치 나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79년 10월 26일 선포돼 1981년 1월 24일까지 이어진 비상계엄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마지막 비상계엄이 바로 이때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을 검토했는데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뗀 뒤 "2024년 겨울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돼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 총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을 봤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분들 태도도 인상 깊었다"고도 덧붙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다. 한 작가는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6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한강 작가가 참석, 착석하고 있다. 스톡홀름=신은별 특파원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분류에... "가슴 아파"
한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로 분류됐었던 점 등을 거론하며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한 것은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 몇 년간 한국 도서관에서 몇 천 권의 책이 도서관에서 폐기되거나 열람 제한이 됐다"며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분들이 많이 고민하고 책을 비치하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검열을 할 것 같아서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문학의 역할을 묻자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그런 행위인데 계속 그런 행위를 반복하며 내적인 힘이 생긴다"며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문학을 통해) 생긴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도 그는 강조했다.
'제2의 한강'을 위해서 어떤 부분이 달라져야 하는지 질문이 나오자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면서도 "문학을 잘 교육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독자가 작가는 아니지만 모든 작가는 열렬한 독자'라는 문구를 언급하면서다.
한강(왼쪽 두 번째) 작가가 6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뉴스1
"노벨상, 부담됐지만 이제 편안해져"... '희망'도 언급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느꼈던 부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 작가는 "처음에는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한달 넘게 생각한 끝에 '이 상은 문학에게 주는 것이고 문학에게 주는 상을 제가 이번에 받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그러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전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냥 축하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수상 소식 직후 전해진 데 대해 "축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가족들이 너무 크게 잔치를 하겠다고 해서 (만류를 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웃기도 했다. "조용히 축하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그는 "(전쟁 등이 진행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시기"라며 "때로는 '희망이 있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요즘은, 아니 몇 달 전부터, 어쩌면 그 전부터는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10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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