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은 1,639만4,815명은 대부분 배신감과 자책감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이다. 계엄 선포도 놀랄 일이지만, 이후 언행을 보면 바닥이 어디인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계엄을 ‘결연한 구국 의지’로 포장하며, 시종일관 ‘내가 뭘 잘못했냐’는 태도였다. 갑자기 국회로 달려오다 홱 돌아가더니, 그러고선 내놓은 대책이 달랑 ‘임기 단축 수용’이다.
□ 매일매일이 현대사의 가장 다이내믹한 날들이다. 당장 오늘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고, 일상이 망가진 국민은 마음을 잡지 못한다. 처음엔 폭군이었으나, 이젠 혼군(昏君)이자 암군(暗君)이다. 그를 보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지경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실제 그의 행동에선 병증을 연상케 하는 특징들이 감지된다. 극단적 즉흥성, 지독한 독선, 자기 존재와 능력을 부풀리는 과대망상,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치 않는 공감능력 결여 등이다.
□ 압권은 “야당 경고용으로 절박한 심정에서 그랬다”는 인식이다. 하긴, 역사적 결정을 했다고 자부한 과거 지도자들도 절박하다곤 했다. 그러나 독선과 망상이 절박을 만났을 때, 언제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게르만족 생활권(레벤스라움) 확보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북아프리카에서 판판이 깨지는 와중에 그리스를 침공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그랬다. 일본이 서양의 압제에서 아시아를 해방할 것(대동아공영권)이라며 진주만을 기습한 도조 히데키도 빠질 수 없다.
□ 히틀러 같은 리더와의 비교는 심하지 않으냐고? 그렇지 않다. 윤 대통령이 미래에 받을 평가는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가 자국에서 받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639만 명의 기대를 배신하고, 보수의 밥그릇을 박살낸 민폐. 나아가 군을 망치고 나라와 민족을 단숨에 누란지위에 밀어넣은 그 죄를 역사는 길고 엄히 물을 것이다. 그 이름 석 자는 한국 보수의 금기어로 오래 남을 게 분명하다. 그의 임기를 하루라도 늘려주는 데 동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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