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부터 장애, 아버지가 곁에서 간호
비관적인 아들 "같이 죽자" 반복
딱한 사연에 가족·시민단체 선처 호소
법원 "헌신 인정, 살인 정당화는 안 돼"
지난해 10월 24일 대구 남구 이천동의 한 주택. 여느 때 저녁처럼 A(63)씨는 중년의 아들(39)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은 아버지의 보살핌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을 오랜 세월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돌보고 챙겨 온 A씨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아버지만큼이나 아들의 감정도 나날이 고조되고 있었다. 평생을 장애와 함께 살아오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삶에 대한 비관이 쌓이고 쌓였을 터. 이날 아들의 과격한 행동 역시 그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식탁 위에 올라와 꼬리를 흔들던 반려견을 발로 차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이 모습을 지켜보던 A씨에게 수십여 차례 이렇게 말했다.
"아빠 같이 죽어, 죽자. 아빠 같이 가. 이제 악마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천사가 있는 하늘나라로 같이 가자."
A씨는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아들을 지켜 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심이 선 A씨는 한 달 치 우울증 약과 보드카 한 병, 소주 반 병을 들이켠 뒤 부엌으로 가 흉기를 집어 들었다. 화장실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들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이어 평생을 돌본 아들을 따라가겠다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몇 시간 뒤 일을 마치고 귀가한 A씨의 아내는 피투성이로 숨진 아들과 의식불명 상태인 남편을 보고 소스라쳤다. A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부지했다. 극단적 선택은 무산됐다. 아들은 "같이 가자"고 했지만 A씨는 더 이상 아들의 곁에 함께 있을 수 없게 됐다.
A씨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 어재원)는 지난달 25일 A씨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39년 넘도록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보살폈고,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통상의 자녀 양육보다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부모로서 자녀의 처지를 비관해 삶을 앗아가는 것은 경위를 불문하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아버지는 왜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생명을 빼앗은 아버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경찰의 수사와 법원 재판 과정을 토대로 돌아본 부자의 삶은 처절했다.
아들은 정신지체 3급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2014년에는 뇌출혈까지 발생해 1급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고 상태가 악화됐다. 이때부터 A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아들을 돌보며 간호하는 데 헌신했다. 아들의 곁에는 언제나 A씨가 있었다. 온전히 돌봄에 전념하기 위해 A씨의 아내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에서는 아들을 장애인시설에 보내라고 권유했지만 남들은 뭐라 해도 A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장애인시설에 보낸다는 것은 그의 선택지에 포함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A씨의 편이 아니었다. 아들은 장성했어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간병에 대한 부담은 커져만 갔다. 설상가상 2021년 3월 A씨는 허벅지와 다리 근육이 파열되고 발가락이 절단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유증이 찾아왔지만 지난해 8월 보험사는 '더 이상 치료비를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심해졌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해 8월부터 A씨에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같이 죽자"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비관적인 아들의 말과 지칠 대로 지친 마음, 교통사고까지. 무력해진 A씨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용서받지 못할 선택 쪽으로 점점 기울어졌다.
가족도, 장애인 단체도 "선처" 호소
천륜을 저버린 살인에도 가족들은 선처를 호소했다. 39년 동안 오로지 아들을 위해 살아온 남편의 헌신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법정에서 "남편이 아들을 전적으로 부양하며 고생을 많이 했고, 양육과 간호를 맡기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A씨의 둘째 아들도 "모든 일을 접고 간병에 애쓴 점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생명을 해하는 것은 범죄임에 틀림없지만, 이 사건은 한 개인과 가족이 떠안기에는 너무나 지독한 상황인 것이 현실"이라며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방관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 큰 만큼 형법 제53조 '작량감경(범죄에 정상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으로 행하는 형의 감경)'을 이번 사건에 적용해 가족과 사회의 선처 요구에 응답해 달라"고 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살인은 살인"
법원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재판부는 지난 9월 열린 공판에서 "자녀나 병중에 있는 부인을 살해하는 행위 등 극히 드물지만 유사 사례에 비춰 실형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피고인의 건강상태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어 (양형에)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A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는 이런 고민을 뒷받침했다. "범행 당시 A씨는 심신미약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져 정서적으로 압도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술과 과도한 약물을 복용한 뒤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A씨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주변 가족·환경에 대한 관심은 물론 정신건강 치료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검찰도 올해 1월 A씨를 기소하면서 제반 사항을 참작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상기된 표정의 A씨는 최후 진술에서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법원이 살인의 정당성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부모로서 자신 또는 자녀의 처지를 비관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어떤 경위를 불문하더라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범행은 어디까지나 피고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피고인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피해자는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피고인에게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 속에 삶을 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가슴 아픈 사정과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피해자가 겪었을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인간 생명의 존귀한 가치 역시 고민하고 참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심 끝에 내린 징역 3년형. 살인죄에 대해 무거운 처벌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도 적절한 형벌인지 세간에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A씨 측은 이달 4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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