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처음 읽은 독자 10인 인터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생생하게 다가와"
"쉽게 읽히지 않지만, 독서 즐거움 깨달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니, 광주가 더 이상 남같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계엄이란 상황도 그렇고요. 그런데 2024년에 또 계엄령이라니. 딸과 주말에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강의 책을 처음 읽었다는 김명희(61)씨 얘기다. 이름만 들어봤던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탔다는 소식에 그는 딸에게 곧장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집에 한강 책 있니.’
그렇게 읽게 된 책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의 국가 폭력을 다룬 ‘소년이 온다’였다. 김씨는 “당시에 고등학생이라 이 사건을 전혀 모르다가 나중에야 어렴풋이 알았다”며 “자녀를 키우고 있어 소설 속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외침이 더 뼈아프더라”고 전했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나서본 적 없는 집회에 참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그는 “제목 그대로 소년이 내게로 온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시상식(10일)을 앞두고 그의 책을 처음 읽은 독자 10명에게 소감을 물었다. 이들은 한강이 노벨문학상 강연에서 소개한 여덟 살 때 지은 시 '빛과 실'을 인용해 그의 작품이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처럼 서로를 연결해 냈다"는 데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소년이 온다’가 정치적? 오히려 반대”
주부 김소영(56)씨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소년이 온다'를 구매했다. 책을 펼치기 전 경건히 목욕재계를 했다는 김씨는 “처음엔 책이 얇아서 ‘금방 읽겠다’ 싶었는데, 한 장을 읽고 덮고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벌어진 열흘간의 일들에 대한 “해부학 실험을 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같이” 세세한 묘사 때문에 차마 계속 읽기가 힘들어서였다. 그는 “책 2장의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라는 문장에서는 정말 내가 총을 맞은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고 전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대학원생 윤경준(28)씨는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에는 정치적인 책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는데 반대로 담담하고 건조하더라”라는 소감을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임새하(26)씨도 “실제로 그 일을 한참 전에 겪은 사람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차분하게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바리스타인 이하영(21)씨 역시 한강의 소설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표현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읽기 쉬운 책 아니지만…”
한강의 작품을 처음 읽은 이들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로 처음 한강을 접했다면 더욱 그랬다. 한강 작가 역시 6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 기자간담회에서 “가끔 고등학생들이 ‘채식주의자’를 가져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항상 ‘이건 나중에 읽어라’고 말한다”고 할 정도다.
“부끄럽지만 수험서를 제외한 책을 읽은 지가 15년이 넘었다”는 김영수(36)씨는 부푼 마음으로 책 ‘채식주의자’를 펼쳤다가 채식을 선언한 주인공 ‘영혜’를 향한 주변의 거친 폭력에 당황했다. 그는 “읽기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내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며 “이쩌면 이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독서의 즐거움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김민정(32)씨는 ‘채식주의자’에 관해 “무겁고 유쾌하지 않은 내용임에도 흡입력이 상당해서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면서도 “이 책을 읽고 다른 한강 작가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영업자 김재현(42)씨도 ‘채식주의자’에 관해 “너무 어두워서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줄었다”고 전했다.
한강의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로 그의 글을 처음 접한 이들도 있다. 황인섭(59)씨는 “시집의 첫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보고 인생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며 “다음으로는 한강의 무슨 책을 읽을까 설렌다”고 전했다. 문동댁(가명·44)씨는 “시적인 요소를 작품에 녹여냈다는 점이 한강 작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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