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계엄으로 무색해진 선진 대한민국
선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추락할 수도
경제 챙기는 여야정 비상체제 확립돼야
우리나라는 경제로 보면 확실히 선진국 대열에 있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6,194달러다. 5,000만 명 이상 인구 국가 중 세계 6위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다음이다. 일본은 이제 우리보다 아래에 있다. 1960년대 경제성장이 시작된 후 반세기 만에 최상위 선진국의 지위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사건이다. 그 덕에 국제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찬탄과 놀라움이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교수가 이미 1988년 한국의 경제발전 사례를 '기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도 그들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국을 성공국가의 사례로 여러 차례 거론한다. '기적'과 '성공국가'-한국 경제가 반세기의 노력 끝에 얻어낸 평판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굴곡과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가 있었다. 중진국까지는 그런 대로 성장했지만,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어렵다는 평가가 한국 경제의 진단으로 대세를 이뤘던 때다. 원인으로는 한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지목됐다. 시스템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어두운 예측이 많았다. 그때까지 반세기 만에 선진국에 도달한 나라는 없었으니 통계적으로는 당연하기도 했다.
그 의구심들을 모두 이겨내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 경제는 안타깝게도 2024년 비상계엄 사태로 새로운 시험에 들었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이미 우리나라의 내년과 그 이후의 성장률은 1%대 중반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었다.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도할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과 중국의 경기침체 장기화가 복합 작용하며 우리 경제의 앞날을 한층 어둡게 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진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은 향후 과연 선진국의 지위를 계속해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비상한 물음을 마주했다.
세계사에서 일단 선진국 대열에 도달한 국가가 중진국으로 몰락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유형·무형의 정치경제제도가 요구되고, 일단 사회에 정착된 제도는 망가지기도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국가에서 탈락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유일하게 선진국에서 중진국으로 하락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 분석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후진적인 정치행태다. 이번 우리가 맞닥뜨린 시험도 온전히 국내정치의 혼란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유례없는 반세기 만의 선진국 진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놀라운 기록이지만, 그 이면의 약점은 정치경제제도의 성숙은 아직 미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선진국 도달 후 유례없이 빠른 중진국으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는 위기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정치이므로 문제 해결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어떤 해법이 선택되든 절차가 있으므로 최소 몇 개월 이상의 행정부 리더십 공백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야에 바라건대 경제의 관리는 정치영역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로부터 가능한 한 독립시키는 방안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당장 1개월 뒤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관련된 경제현안이 발등의 불이다. 어떻게든 행정부 각료와 여야가 힘을 합쳐 경제는 챙길 수 있는 비상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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