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동남아 계엄의 역사
12·3 불법 계엄 사태에 국제사회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령에 각국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견고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각국은 지도자 암살, 군사 쿠데타, 대규모 시위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 때 사태 수습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전쟁 지역을 제외하면 주로 권위주의 국가가 독재를 유지하거나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목적으로 악용한 게 계엄령이다.
대표적인 곳이 동남아시아다. 미얀마 태국 필리핀 등의 경우 최근까지 비상계엄령 흑역사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정치인과 언론인이 대거 탄압받았고 국민들의 목소리는 묵살됐다. 지난 3일 한국의 불법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계획했던 ‘불의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21세기 한국에 어른거리는 과거 동남아 계엄 그림자를 살펴본다.
정치인·민주화 운동가 2만6000명 체포
미얀마는 계엄 상황이 현재 진행형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2월 1일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승리를 부정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뒤 수치 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잡아들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자 군정은 일주일 뒤(2월 8일) 저항이 가장 거셌던 제1·2 도시 양곤과 만달레이를 비롯해 7개 대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미얀마군은 “계엄령 선포 지역에서의 모든 행정 및 사법 업무는 지역 군지휘관이 관할한다”며 “군사재판을 통해 테러·선동·부패·살인 등 23개 범죄에 대해 사형과 무기징역을 포함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해산 명령에 불응하는 시위대를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다.
반군부 진영의 저항이 거세지자 군부는 계엄령 선포 지역을 점점 늘려 나가며 대응에 나섰다. 쿠데타 발발 3년 10개월이 지난 현재, 미얀마 내 계엄령 선포 지역은 330개 타운십(기초행정구역) 가운데 61곳으로 늘어났다. ‘국가비상사태’도 벌써 6번째 연장하며 권력을 이어가고 있다. NLD 소속 정치인을 포함해 지금까지 약 2만5,900명의 민주화 운동가와 정치범이 체포됐다.
군부 탄압을 피해 태국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미얀마인 헤인(26)은 지난 8일 한국일보에 “한국 비상계엄 선포 관련 뉴스를 보고 ‘한국 같은 (민주화된) 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무장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사진에서는 쿠데타 당시 고국 상황이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미얀마와 달리 의회 저지로 계엄이 빠르게 해제되고 군인들도 유혈진압에 나서지 않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계엄과 닮은 필리핀 계엄 상황
필리핀에서는 1946년 식민지 독립 이후 세 차례 계엄령이 발동됐다. 필리핀 정치·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계엄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필리핀 대통령의 아버지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1917~1989)이 두 번째 임기 중인 1972년 내린 조치다.
마르코스는 당시 “공산주의자와 분리주의자들이 국가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며 국가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하루 만에 반정부 인사와 야당 의원, 언론인 등 400명을 체포했다. 정당 활동은 금지됐고, 언론사는 대거 통폐합됐으며, 모든 출판물에 검열이 이뤄졌다. △국회,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담긴 윤석열 정부 계엄사령부 포고령과 닮았다.
필리핀에서는 이후 1981년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수천 명의 반대파가 체포·고문당하고 살해됐다. 계엄 기간 국가 피해로 필리핀 정부가 공식 배상한 인원만 1만1,000명이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망명했다.
마르코스의 독재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리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70년대 아시아 경제를 이끄는 부국(富國)으로 여겨졌던 필리핀은 긴 독재 기간을 거치며 저성장 국가로 추락했다. 그가 축출된 이후에도 필리핀 경제는 오랜 기간 회복하지 못했다. 누적된 정치적 불안과 부패가 성장 발목을 잡은 탓이다. 결국 필리핀은 ‘아시아의 병자’라는 오명을 얻었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도 두 차례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2009년 정치 테러로 60명 가까이 숨진 남부 마긴다나오주(州)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7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반군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남부 민다나오섬에 계엄령을 내렸다.
2017년 계엄령의 경우 테러와 납치를 일삼는 이슬람계 반군을 섬멸하고 국민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게 공식 선포 이유였지만, 야권에서는 두테르테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계엄령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실제 그는 이후 진행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데도 계엄군을 투입하는 등 비상계엄을 무기 삼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계엄령에 외국인 투자자 몸 사릴라”
태국 근현대사는 ‘군부 정치 개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군부 쿠데타와 비상계엄으로 점철됐다. 1932년 태국에 입헌군주제가 수립된 이래 쿠데타가 19차례 발생했고 그중 12번 성공했다. 쿠데타가 잦은 만큼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반대 세력을 찍어 누르려 비상계엄령을 내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20세기 들어 태국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10차례가 넘는다. 이 가운데 세 번은 2000년대 이후 이뤄졌다. 2006년과 2014년에는 각각 탁신 친나왓 총리와 그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친(親)탁신계인 이른바 ‘레드셔츠’ 진영이 이에 반대하며 2006년과 2010년, 2014년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군부는 그때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쏘는 등 무력 진압했다.
군부는 눈엣가시 같은 당을 해산시키기까지 했다. 태국 진보 성향 전진당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2030세대의 민주화 열망을 등에 업고 제1 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군부가 장악한 상원의 반대로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야당으로 물러서야 했다. 친군부 성향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전진당이 왕실을 모독했다며 해산 조치까지 내렸다. 계엄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였다.
잇따른 국내 정치 불안정은 태국 경제 발전을 서서히 좀먹었다. 태국은 한때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동남아 자동차 제조업에서 존재감이 컸지만 현재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이웃나라에 자리를 내줬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1.9% 수준에 그친다. 다른 동남아 국가 성장률이 5~7%대를 웃도는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 투자금이 태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체제가 안정적인 인근 국가로 옮겨간 탓이다.
한국의 경우 불법 계엄 기간이 150분 만에 끝났지만, 국가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 등을 둘러싸고 정치 불안이 이어질 경우 경제에 추가 악영향도 불가피하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6일 ‘윤석열의 절박한 스턴트 쇼가 대한민국 GDP 킬러인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앞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은 ‘아시아 계엄령’이라고 하면 미얀마, 필리핀, 태국에 이어 한국을 떠올리고 몸을 사릴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대가는 한국 5,100만 명의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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