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타임 셸터'·'카이로스'
사회의 역사·문화 다룬 "박물관으로서의 소설들"
"실망은 남지만 희망은 새로운 세대와 자라난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장편소설 ‘타임 셸터’와 예니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카이로스’. 각각 불가리아와 독일 소설가가 쓴 두 작품을 묶는 고리는 ‘부커상’이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하다.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천명관 ‘고래’, 황석영 ‘철도원 삼대’ 등이 이 부문 최종 후보작이 되면서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또 있다. ‘타임 셸터’와 ‘카이로스’는 역사와 정치, 예술 등을 폭넓게 아우르며 오늘날의 독자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이어간다.
"'타임 셸터'는 과거에 고하는 작별"
“우리는 과거라는 방공호를 마련해야 하네. 시간 대피소라고나 할까.”
책 ‘타임 셸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사 ‘가우스틴’과 화자인 ‘나’가 함께 스위스에 만든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클리닉에 관한 이야기다. 클리닉은 기억을 잃은 환자가 살았던 과거를 물건뿐 아니라 빛과 향기까지 재현한다. 화자는 말한다. "그들(환자)에게 현재는 외국이며 과거야말로 모국"이기에 "그들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클리닉 1층은 1940년대, 2층은 1950년대, 3층은 1960년대로 꾸며진다. 환자들에게 시간을 되찾아주는 요법으로 클리닉은 인기를 끈다.
클리닉을 배경으로 소설도 과거로 돌아간다. 옛날 복식을 하고 예전처럼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예 ‘유럽 공통 과거 연합’에 관한 국민투표를 준비하고,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불가리아가 국가사회주의로의 회귀를 택한다. 작가 고스포디노프의 모국이다.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인 작가의 이력답게 소설은 여러 문학의 경계를 유영하며 유럽이 세계에 지배권을 휘두르던 ‘영광스러운 과거’의 실체를 폭로한다. “점점 더 악랄해지고 점점 더 진짜처럼 되어”가는 역사 재현에 “미래의 독재가 가고 과거의 독재”가 온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이 “독창적이고 전복적이며, 음울하고도 유머러스한 소설”이라고 평가한 이 작품을 문학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 상상력이라며 그저 흘려버리기에는 강경 우파가 득세하는 각국의 현실이 어른거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4년에 계엄령이 발동한 한국도 있다. 고스포디노프는 '작가의 말'에서 “어느 정도는 과거의 꿈에 고하는 작별, 아니 오히려, 일부 사람들이 시도하는 과거의 변형에 고하는 작별”이라고 전했다.
"희망은 새로운 세대와 더불어 자란다"
1986년 7월의 금요일, 동베를린에서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는 그녀를 보았다. 책 ‘카이로스’에서 ‘카타리나’와 그보다 서른네 살 많은 ‘한스’는 “모든 것이 마치 정해진 것처럼” 서로에게 얽힌다. 나이는 물론 한스에게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소설은 한때 “너와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 둘이 아니라면,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고 하늘은 무너져 내린다”는 독일의 시인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시처럼 열렬하고 운명적이던 사랑에 대한 파국의 연대기다.
작가 에르펜베크는 소설 속 카타리나와 닮았다. 모두 1967년 동독에서 태어났고, 고향과 청년 시절의 직업도 같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의 목격자로서의 시선은 카타리나를 통해 소설로 구현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의 엘리트 작가 한스와 국영 출판사 직원 카타리나의 관계는 체제의 몰락과도 궤를 같이한다.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독일 파시즘의 시대를 살아온 구시대와 통일 독일을 사는 새로운 세대의 반영이기도 하다.
‘카이로스’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시대에서의 자유는 진취적인 해방보다는 갑작스러운 유실에 가깝다. 과거는 ‘타임 셸터’뿐 아니라 ‘카이로스’에서도 주요한 소재다. 그러나 소설 속 “과거를 묻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문답은 마냥 끌려다녀야 한다는 무기력만은 아니다. 에르펜베크가 책의 출간을 맞아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말하듯이. “실망은 우리 영혼에 새겨져 남는다. 그래도, 희망은 모든 새로운 세대와 더불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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