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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망국의 책임자인가, 제국주의 피해자인가

입력
2024.12.14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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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박영선 화백 작품. 휴머니스트 제공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박영선 화백 작품. 휴머니스트 제공

고종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대한제국을 수립하는 것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알려진 정치가 윤치호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60여 년에 걸쳐 쓴 일기 ‘윤치호일기’에 “전 세계 역사상 이보다 수치스러운 황제의 칭호가 있을까”라고 적으며 정부의 노력을 평가절하했다.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 귀스타브 뮈텔도 비판적이었다. “어쨌든 조선은 독립국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문제다.” 그가 ‘뮈텔주교일기’에 쓴 글이다. 반면 황희 정승의 후손인 재야 학자 황현은 역사서 ‘매천야록’에서 주권국가인 조선이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은 이처럼 대한제국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당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앞서 열거한 세 명 외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활동했고 역사서 ‘대한계년사’를 쓴 정교, ‘하재일기’를 남긴 평민 출신 상공인 지규식까지 서로 다른 입장에 있었던 다섯 명의 관점이 교차한다.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늑약,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경술국치 등 대한제국의 역사를 이들의 기록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다시 들여다본다. 당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각종 신문 자료 등의 기록도 곳곳에 담겼다.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김태웅 지음∙휴머니스트 발행∙928쪽∙4만4,000원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김태웅 지음∙휴머니스트 발행∙928쪽∙4만4,000원

저자는 일제가 편찬한 ‘고종실록’ ‘순종실록’이나 특정 역사학자의 주장에 함몰되지 않고 보다 주체적으로 당시를 통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설명한다. 대한제국은 무기력한 망국의 책임자였을까,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근대화를 위해 애쓴 제국주의 시대의 피해자였을까. 저자는 이분법적 해석이나 인과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설명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대적 맥락에서 역사를 성찰해볼 것을 주문한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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