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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우리가 해냈다" 외친 200만 시민들… '이젠 헌재가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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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우리가 해냈다" 외친 200만 시민들… '이젠 헌재가 응답하라'

입력
2024.12.14 17:28
수정
2024.12.14 18:4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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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결 소식 들리자 국회 앞 일제히 환호
꽹과리·K팝 등장 등 흥겨운 축제 방불
"깊었던 갈등 이제는 봉합해야" 목소리
광화문 보수단체 오열… "계엄 옳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드디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던 차연서(39)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비상계엄령 사태로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차씨는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오늘 밤은 푹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1980년 계엄 상황에서 병영집적훈련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다 구금됐다는 김인봉(61)씨도 "내가 겪은 끔찍한 세상이 다시 오지 않는,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와 안도감이 든다"며 웃어 보였다. 여의도 거리 곳곳은 서로를 얼싸안고 춤을 추는 시민들로 들썩였다.

응축됐던 국민의 분노가 환호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날 오후 5시 국회의 탄핵안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여의도에 모인 200만 명(경찰 비공식 추산 20만 명)의 시민들 사이에선 묵직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비상계엄 선포로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대통령을 향한 엄중한 질책이자, 민심을 외면한 권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다. 물리적 폭력 없이 평화롭게 진행된 이날 '촛불집회'는 연령, 성별, 장애, 정치적 지향을 넘어 국민을 한데 모은 '축제의 장'이 됐다.

일주일 전 한 차례 탄핵 실패를 겪었던 시민들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더 일찍 여의도로 모였다. 세 가족이 함께 여의도로 온 정상원(49)씨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네 살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몇 년 안 돼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며 "탄핵은 당연하고 사법처리까지 제대로 돼야 올바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일곱 살짜리 아이는 '윤석열 할아버지는 물러가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연신 흔들었다.

표결 직전 국민의힘이 '탄핵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며 한때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탄핵 가결이 확정되자 국회 앞은 순식간에 축제 현장으로 바뀌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자 참가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흥겹게 춤을 췄다. 장구와 꽹과리를 치는 사물놀이패도 빼곡한 시민 사이를 돌아다니며 연주했고, 각양각색의 아이돌 그룹 응원봉과 다양한 문구의 깃발이 흔들렸다. 보수의 중심지인 대구 출신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다수가 군인이었다는 박재욱(49)씨도 "군인을 희생자 삼은 대통령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며 "이제 계엄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신명하게 술 한잔해야겠다"고 미소 지었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오랜 갈등이 봉합되길 바랐다. 이아림(23)씨는 "취업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경제부터 안정됐으면 좋겠다"며 "계엄 사태로 더욱 복잡해진 국내 갈등 상황과 외교 문제도 하루빨리 원상복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엄 사태 이후 미국에서 국내로 입국했다는 정경호(53)씨는 "성소수자, 복수국적자 등 소수자들이 살기에 안전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교민이자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인 한 여성은 국회 인근에 1,000잔의 커피를 선결제했고, 국회 담장 근처에는 '무료로 가져가라'며 물과 핫팩을 나눠주는 시민들도 많았다. 영유아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을 위해 기저귀를 교체하고 모유·분유 수유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키즈버스'도 등장했다.

보수단체 "탄핵은 말도 안 된다" 울부짖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민국살리기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계엄령은 정당했다'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들고 12·14 광화문 국민혁명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민국살리기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계엄령은 정당했다'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들고 12·14 광화문 국민혁명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반면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며 집결한 시민들은 가결 소식에 격앙됐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자유통일당 등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석한 정용호(68)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며 "당연히 탄핵은 무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참가자는 소리를 지르며 땅에 주저앉아 오열하기도 했다. 연단에 선 장학일 자유마을총재는 "윤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했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며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부정선거를 밝힐 수 없고, 민주당과 한동훈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2중대(의 진면모)를 밝혀낼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4만1,000명, 주최 측 추산 310만 명이 모였다.

전유진 기자
김혜지 기자
최현빈 기자
김진영 기자
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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