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K팝 새로운 '평화 시위 주도한 '2030'
"정치는 정파적, 시위는 과격" 편견 벗어던져
"더 나은 사회 위해 직접 행동하는 세대 될 것"
14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 200만 명(경찰 비공식 추산 20만 명)은 엄청난 환호를 쏟아냈다. 역사는 시민이 바꾼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다. '12·3 불법계엄 사태' 후 11일간 이어진 집회는 촛불 대신 응원봉, 민중가요 대신 K팝이란 새로운 시위 문화의 등장을 알렸다. 무엇보다 '2030세대', 특히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탄핵소추안 가결이란 경험이 이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로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평화 집회 계기 '정치·연대'에 관심
한국일보가 국회 앞에서 만난 2030은 "이번이 첫 집회 참여였지만, 마지막 집회는 아닐 것"이라 입을 모았다.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지만, '반짝 집회'에 그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겠다는 의미다. 일주일간 매일 저녁 집회에 참석했다는 김모(26)씨는 여당의 본회의장 퇴장으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7일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몰라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함께 집회를 찾은 친구들과 탄핵 정국에 대한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언론사에서 발행한 호외를 챙기던 한 20대 참가자는 "탄핵까진 (대부분 매체가) 한목소리를 냈는데 이후 (향방을) 지켜보려 일부러 정치색이 다른 신문들을 다양하게 가져왔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헌법재판소 앞 집회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응원봉을 흔들고 K팝에 맞춰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축제 같은 집회는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 공론장의 영역을 2030세대에게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직장인 강소영(29)씨는 "탄핵 집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이렇게 웃으며 콘서트 즐기듯 해도 되나'라는 생각에 주춤했다"면서도 "형식보단 우리 뜻을 국회와 대통령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것이 곧 정치와 집회의 본질임을 깨닫고 더 열심히 노래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정치에 대한 논의를 기피했다는 박지수(27)씨도 "정치는 정파적이고, 집회는 과격한 거란 통념이 깨졌다"며 "딥페이크와 전세사기처럼 우리 생활과 맞닿은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때도 관련 집회를 찾아 참석할 것"이라 강조했다.
"연대의 의미 되새기는 계기"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무심하던 일부 2030들이 집회를 통해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을 거란 분석도 있다. 강모(30)씨는 "카페에 수백만 원어치 음료를 선결제 해두거나, 여분의 핫팩과 간식을 나눠주는 광경이 생소했다"며 "불편을 감수하며 거리에 나오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 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함께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송파에서 온 장윤석(29)씨도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됐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들이 연단에 올랐고 그간 속 편하게 모르고 지냈던 이야기들을 알게 돼 반성했다"고 털어놨다. 20대 남성인 그는 "2030 남성의 참여율이 저조했는데, 내 또래 남성들도 현장에 와서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장이 마련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의 주축이 됐던 청년, 특히 여성들은 세대적·젠더적 소수자다. 소수자 의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함께 개선된다"며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2030세대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이뤄지리라 본다"고 예상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여성, 노동, 이주민 등 기성세대가 관심을 두지 못한 영역에까지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는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며 "정치가 어려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이상 (2030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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