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을 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24)씨의 재입북 경로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군은 김씨가 강화도 북쪽 지역 철책 배수로를 통해 한강 하구로 나간 뒤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했다. 군의 각종 감시장비 사각지대가 드러났고, 경계태세 책임론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7일 “해당 인원이 월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강화도로 특정했다”며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지점은 철책이 아니라 배수로”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전날 월북 지점을 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도, 교동도 일대로 압축한 상태였다.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해당 인원(김씨)을 특정할 수 있는 유기된 가방을 배수로 인근에서 발견, 현재 정밀 조사 중”이라고 했다. 김씨 가방에는 480만원을 환전한 영수증과 물안경 등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합참은 월북 시점에 대해선 “현재 특정하고 있지만 추가 조사를 통해 종합적 평가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18일 오전 2시 20분쯤 택시를 타고 강화읍 월곶리 일대에서 하차한 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김씨의 마지막 동선"이라고 밝혔다.
해병대 2사단이 관할하는 강화도 일대는 과학화경계장비가 설치된 철책과 폐쇄회로(CC)TV, 열상감시장비(TOD) 등이 갖춰져 경비가 삼엄한 편이다. 그러나 김씨가 감시 사각지대인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 일대 철책에는 ‘광망’이 그물처럼 촘촘히 설치돼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면 경보음이 울리고 인근 초소에서 출동하게 돼 있다. 하지만 김씨가 철책을 건드리지 않고 배수로를 통과했다면 경보음이 울릴 리 없다. 철책 아래 배수로의 형태와 크기는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통과가 용이한 큰 배수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CCTV도 철책 아래 배수로는 잡지 않아 제 역할을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소식통은 “CCTV는 감시병들이 전담하는데 카메라 안에서 물체가 움직이면 빨간색으로 표시돼 추적이 가능하다”며 “감시병들이 경계 태세에 소홀했거나 CCTV가 배수로까지 커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기상 상황도 악재였다. 김씨가 월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9일 강화도 일대에는 비가 내렸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 “TOD는 말 그대로 ‘열’을 통해 감시하기 때문에 ‘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비가 오는 상황에서 물 속에 숨은 탈북자를 잡아내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TOD는 적을 감시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 주로 전방을 향해 있다. 철책 아래 배수로에서 경계를 넘어가는 김씨를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대북경계 중심 감시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김씨가 파고든 셈이다.
접경지 경계 실패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문책론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지난해 6월 삼척항 목선 입항 사건 당시 ‘경계작전 실패’를 인정하고 대국민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당사자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도 이날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28일 국방위 전체회의가 열린다. 업무보고 차원에서 잡힌 일정이지만 이 자리에서 정 장관은 물론, 허술한 경계태세를 드러낸 군 당국에 대한 질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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