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인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47)씨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설날에만 하더라도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이 부산으로 내려오고, 부산에 있는 동생들 내외와 가까운 친척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와 만남을 가졌지만 올해는 예외였다. "제발 이번 추석은 만나지 말자"는 부모님의 엄한 당부 때문이었다.
김씨가 명절날 편안한 휴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집에 부모님이나 친척분들이 찾아오지 않은 이유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최종적으로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만나지 못하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몸’보다 ‘마음’ 편한 휴식을 한 셈이다.
김씨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엔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번에는 만나질 못하니까 그런 경우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설날에 다가올 총선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 나와 언성이 높아지는 소동이 한바탕 벌어졌다. 김씨는 “올해는 정부지원금 등 코로나19 정국과 관련해 나이 드신 분과 그렇지 않은 쪽 등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많이 나올 것 같았다”면서 “다행히 만남 자체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 사는 이모(58)씨도 지난 설날 큰집을 찾아 갔다가 20대 대학생인 아들과 할아버지가 정부의 각종 정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당했다. 이씨는 “한번 언쟁이 붙으니까 주변에서 말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면서 “결국 아들이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분위기는 헤어질 때까지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이번에는 큰집에 모이지 않기로 해 비슷한 사례가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했다.
언쟁이 생기는 이유는 서로 다른 견해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이 보고 듣고 싶어하는 내용만을 접하거나 ‘가짜뉴스’ 등을 통해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바람에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절 밥상머리 대화가 없어진 것이 좋은 것만 아니라는 입장도 있다. 부산 남구에 서는 김모(51)씨는 “다소의 다툼과 서로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잘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라 어쩔 수 없지만 명절을 맞아 일가 친척 등 온 가족이 모여 하는 밥상머리 대화는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울산에 사는 박모(64)씨는 “명절 밥상머리에서 하는 이야기 때문에 아무리 언성이 높아진다고 한들 의절하거나 멱살을 잡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만나지도 못하고, 그런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더 안타까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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