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칩거생활을 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7개월 만에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최근 코로나19 재유행이 심각한 영국은 재봉쇄령이 내려진 지역이 늘어나고 있어 여왕이 보건수칙 준수 모범을 보여야 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잉글랜드 남부 솔즈베리 인근의 포튼 다운에 있는 영국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를 에너지 분석 센터 개소식 참석차 방문했다. 여왕은 물론 동행한 윌리엄 왕세손 역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왕실 측은 미리 의료적 조언을 구했고 예방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왕실 방문객과 접촉할 예정이었던 48명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방문 기간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모범을 보여야 할 여왕이 마스크 착용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 피어스 모건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날 현장 사진을 올리면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나라가 다시 전면봉쇄로 치닫고 있는데 이것(마스크 미착용)은 왕실의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인권 운동가 고(故) 해리 레슬리 스미스의 아들인 존 스미스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여왕을 보며 마스크 반대론자들은 기뻐서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라며 "매우 강력하고 멍청한 메시지가 됐다"고 비난했다.
영국에서는 현재 대중교통과 상점 등 공공장소에서만 마스크 착용이 의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어렵거나 평소 만나지 않는 다수와 접촉하는 실내 공간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94세 고령의 나이에도 여왕이 건재함을 보여준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잡지 마제스티의 조 리틀 편집장은 "의학적 조언을 미리 구했고 겉으로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듯하다"면서 "이번 여왕의 공개 행사 참석은 대유행 기간 동안 일상 생활이 지속될 수 있다는 가시적이고 시의적절한 확신을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부터 런던 버킹엄궁을 떠나 윈저성에 머물고 있는 여왕은 전화나 화상회의로 일부 공부를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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