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며 중국 포위망 구축에 대한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당장 한쪽의 손을 들어주진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줄타기 외교'가 바이든 행정부라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감탄하는 듯한 발언이 공개됐다. 미국 조야에 퍼진 '한국의 중국 경도론'을 우리 스스로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7일 이날 의회 상원 인준을 받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첫 통화를 가졌다. 외교부는 이날 통화 결과 보도자료를 통해 "양측이 한미동맹 강화 필요성과 북핵문제가 시급하다는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 초반 대외 정책의 큰 흐름은 빠르게 '중국 포위망 구축'을 향하고 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미일 3자 협력 지속의 중요성과 북한 비핵화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강 장관과의 통화에 앞서 이뤄진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한미일 3자 간 협력 필요성이 언급됐다고 밝혔다.
지나 러만도 상무장관 지명자 역시 26일(현지시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미국인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경쟁할 수 있도록 아주 공격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못지 않은 중국 압박 정책을 예고했다.
블링컨 국무장관 취임 날 한국과 미국 간 최우선 의제가 '북핵'과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으로 갈라진 셈이다.
아울러 블링컨 장관은 한미,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모두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의 맥락에서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중국 포위 목적으로 사용돼 온 인도태평양 전략을 유지하고, 한국과 일본을 이에 함께 할 친구로 지목한 셈이다. 반면 외교부 보도자료에 이 부분이 빠진 것은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우리 정부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새 행정부가 들어선 동맹국과 이제 막 소통을 시작한 시점"이라면서 "북핵을 앞세운 우리 입장과 한미일 3자 협력을 앞세운 미국의 입장이 상충되는 게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반면 동맹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메시지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신화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이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지구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국이 발휘한 리더십을 평가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의례적 인사였을 수 있지만,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청와대가 중국에 경도된 게 아니냐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발언들이 중국 매체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내 한국의 중국 경도론이 넓게 퍼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미국의 한미일 3각 공조 요구에 적절히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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