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7인제 럭비 대표팀에게 지난 1년은 10년만큼 길게 느껴졌다. 역사상 처음 거머쥔 귀하디 귀한 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 속에서도 수 없이 킥을 날리고, 태클을 걸고 받으며 그라운드에 뒹굴었다.
7인제 럭비 대표팀이 ‘기적의 트라이’의 꿈을 안고 결전지 도쿄에 입성했다. 2019년 11월 인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중국과 홍콩을 꺾고 아시아 대륙에 단 한 장(개최국 일본 제외)만 배정된 본선행 티켓을 따낸 지 약 1년 8개월 만이다.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에 나서게 된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37)은 22일 본보와 통화에서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진 뒤 대회 취소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돼 가슴이 타 들어갔던 게 사실”이라면서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준비했는데 취소됐다면 선수로선 너무 허무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환경은 꽤 바뀌었다. 일단 대표팀 멤버가 3명 교체됐고, 올림픽 본선 경기는 무관중 개최가 확정됐다. 박완용은 “무관중 경기가 우리로선 조금 더 나은 환경일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명쾌하되 쓰라린 답이 돌아왔다. “저희 사실 관중 없는, 텅 빈 경기장이 더 익숙해요.”
그의 얘기처럼 꽉 찬 경기장보다 텅 빈 경기장이, 열렬한 관심보다 무관심이 익숙한 종목이지만 돌아갈 땐 분명 한국 럭비의 투지를 기억해주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길 바라는 게 박완용의 기대다. 그는 “무관중이란 변수는 모든 팀에게 동등하다”며 “매 경기가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며 뛸 것”이라고 다짐했다.
럭비 대표팀은 26일 오전 10시 세계랭킹 2위인 뉴질랜드와 첫 경기를 치르고, 같은 날 오후 6시 3위 호주와 맞붙는다. 다음날인 27일 오전 10시엔 7위 아르헨티나와 격돌한다. 조별리그에서 만날 세 팀 모두 31위인 한국에겐 버거운 상대지만 박완용은 “스포츠의 매력은 이변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이번 대회에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선수들이 한 번 꼭 붙어보고 싶은 상대는 홈 팀이자 아시아 럭비 최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이다. 한국은 경우에 따라 순위결정전에서 일본과 맞붙을 수 있다. 박완용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며 “이름 탓에 어릴 대부터 ‘매국노(이완용)’란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 꼭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일본 땅에서 애국 한 번 제대로 하는 ‘완용이’가 되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7인제 럭비를 하려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전반 7분과 후반 7분, 여기에 하프타임 1분까지 총 15분짜리 경기지만, 7명이 15인제와 같은 크기 구장을 뛰어야 하는 만큼 체력소모가 상당히 크다. 한 경기에 한 사람당 3~5㎞를 전력질주 하는데, 하루 최대 3경기까지 치러질 경우 13~15km까지 뛴다. 전ㆍ후반 40분씩 뛰는 15인제보다 체력소모가 더 많다는 게 박완용의 설명이다.
한국 럭비 저변은 열악하다. 전 연령대 등록 선수를 다 합쳐도 1,000명이 채 안 되고, 성인 럭비선수가 몸담을 수 있는 팀은 실업팀 3개(한국전력ㆍ현대글로비스ㆍ포스코건설)에 국군체육부대 정도다. 이번 올림픽 대표 선수 대부분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상태라 병역 혜택조차 누릴 일이 없다. 오로지 럭비만 생각하며 부딪힌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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