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열린 도쿄올림픽 근대5종 승마 경기 중 독일의 아니카 슐로이는 텅 빈 경기장에서 울부짖으면서 말을 몰았다. 자신이 탄 '세인트 보이'가 점프 뛰기를 거부했기 때문. 펜싱, 수영, 승마, 육상과 사격 등 5종을 모두 소화한 종합 성적으로 순위를 가리는 이 종목에서 펜싱과 수영에서 선두를 달리던 슐로이는 승마에서 0점 처리되면서 메달권에서 멀어졌다.
답답한 상황에서 독일 근대5종 팀의 감독인 킴 라이스너는 "말을 때려라"라고 여러 차례 외쳤고, 실제로 말의 뒤쪽을 주먹으로 때리는 듯한 장면도 영상으로 포착됐다. 국제근대5종경기연맹(IMPU)은 이를 두고 라이스너가 규칙을 위반했다며 7일 진행된 남성부 경기는 감독하지 못하도록 징계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경기 이후 8일까지 국내외 인터넷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슐로이와 마치 미소를 짓는 듯한 말 세인트 보이의 표정이 함께 나온 사진이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말 표정이 열 받는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도이체벨레(DW) 등은 이런 표정이 말이 기뻐서라기보다는 힘들어할 때 나오는 공격적 표정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근대5종경기연맹은 이 말이 슐로이와 호흡을 맞추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고,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러시아의 굴나즈 구바이둘리나 역시 세인트 보이를 탔는데 역시 점프를 뛰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0점 처리됐다.
세인트 보이 말고도 '말 뽑기 운'이 좋지 않은 선수들은 여럿이었다. '크리스트발 21'은 이탈리아의 엘레나 미첼리를 두 번이나 떨어트렸고 장애물을 그대로 지나가기도 했다. 브라질의 이에다 기마랑이스도 '칼레안시에나 YH'에서 낙마해 0점 처리를 당했다. 메달 획득이 유력했던 아일랜드의 나탈리아 코일은 '콘스탄틴'이라는 말이 몇 차례 점프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체 순위 24위로 경기를 마쳐야 했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근대5종의 특이한 규칙 때문이다. 근대5종은 선수가 기존에 타던 말이 아니라 주최 측에서 미리 마련한 말을 무작위로 지급해 승마 부문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한 번 지급된 말은 4회 이상 명령을 거부하지 않으면 교체할 수 없다. 라이스너는 이런 규정이 "불공평하다"고 토로했다. 국내외의 시청자들도 '바보 같은 경기 규칙'이 선수의 노력을 망쳤다고 비판했다.
말이 배정된 후 선수가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다. 말은 해당 경기장에 익숙하고, 여러 차례 다수의 기수가 테스트해 선발한 말이지만, 경기 기간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쉬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세인트 보이와 같은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말이 제대로 교감이 되지 않은 선수와 경기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 올림픽위원회의 알폰스 회어만 위원장은 국제 근대5종경기연맹의 라이스너에 대한 징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규칙 변경을 검토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어만 위원장은 "규칙을 기수와 말이 보호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동물의 안녕과 선수 사이의 공정한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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