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을 통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살펴봅니다.
2001년 9·11 테러로 2,752명(다른 지역의 희생자 포함 시 2,983명)이 목숨을 잃은 미국 뉴욕 한복판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 자리에 깊이 10m의 검은 물 웅덩이 두 개가 생겼다. 개당 1에이커(약 1,224평)의 정사각형 형태로 지상에서 시작되는 인공 폭포가 검은 화강석 벽을 타고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분당 1만1,400ℓ의 물이 연중 내내 쏟아진다. 폭포를 둘러싼 청동 난간에는 테러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주변에는 400그루의 참나무가 있다. 도시의 소음은 쏟아지는 물소리에 빨려 들어간다. 공원 설계를 맡은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는 “의도가 있는 침묵, 목적을 가진 공백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부재의 반추(Reflection Absence)’라 불리는 이 공원 주변에 높낮이가 서로 다른 5개의 고층 유리 빌딩(World Trade Center·WTC)이 반원을 그리며 들어선다. 5개 중 맏이 격인 2014년 완공된 1WTC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선포된 1776년을 기념해 높이 1,776피트(약 541m)로 지어졌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며, 세계에서 6번째로 높다. 한 해 앞선 2013년 높이 298m의 4WTC가 들어섰고, 2018년에는 3WTC(높이 329m)가 생겼다. 2WTC는 2023년, 5WTC는 2028년 각각 완공된다. 서로 다른 높이의 빌딩들은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부드럽게 나선으로 연결된다. 과거 뉴욕을 대표했던 쌍둥이 빌딩을 대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9·11 테러가 발생한 비극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의 전체 설계(마스터플랜)를 맡은 이는 폴란드 출신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75)다.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대영 전쟁박물관, 덴마크 유대인 박물관 등 세계적인 추모 공간을 설계해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서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사옥을 설계했다.
리베스킨트는 2003년 그라운드 제로 마스터플랜 공모전 참가 당시 “테러 현장의 기억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건물보다 저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초고층 빌딩 설계 일색이었던 당시 공모전의 분위기를 단박에 뒤집은 그의 설계는 단연 주목을 받았다. 그는 “건축은 우리가 지닌 상처, 우리가 겪은 비극, 우리의 손실에 대한 과감하고, 예리하고, 심도 깊은 분석과 희망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상징적인 건축물에서 벗어나 현 세대가 역사의 비극과 마주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얘기다.
8에이커(약 3만2,000㎡)로 조성된 그라운드 제로에는 추모광장과 빌딩 외에도 국립 9·11추모박물관, 아트센터, 플라자 등의 문화 시설들이 함께 있다. 리베스킨트는 “다양한 시설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이루도록 디자인함으로써 고립된 건물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저 벽 하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역사의 비극을 되새길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평평한 공원 대지를 깊게 파고들어 가로지르는 벽으로 지어졌다. 대지를 칼로 잘라내 마치 상처를 드러낸 듯한 형상이다. 두 개의 긴 벽이 125도의 각도를 이루며 만난다. 두 벽은 각 75.21m로 길이가 같다. 대지에서 시작한 뒤 점점 아래로 파고들어 꼭짓점에서 높이 3.12m에 이른다. 각각 워싱턴 기념비와 링컨 기념관을 향해 뻗었다.
낮고 긴 벽은 검은 화강암이다. 광택 처리를 해 주변의 나무와 잔디, 관람객의 모습이 반사된다. 벽 위에는 미국이 참전해 패배한 베트남전쟁(1960~1975)에서 희생된 5만8,196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검은 벽에서 관람객은 벽 위에 새겨진 역사의 이름 위로 비춰진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벽을 설계한 건축가는 중국계 미국인 마야 잉 린(62)이다. 지금은 미국 뉴욕 ‘스톰킹 웨이브필드’나 매사추세츠주의 ‘닐슨 도서관’ 등으로 유명하지만, 기념관 공모전에 참가할 때만 해도 무명의 21세 여대생이었다. 무려 1,422개 팀이 참여한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이 1위로 뽑혔다. 반발이 거셌다. 미국 역사의 뼈아픈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동양계 여대생이 지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기념비가 공개되자 논란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검은 벽과 마주한 이들은 침묵했다.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이들과 마주한 방문객들은 저절로 숙연해지며 전쟁의 의미를 되묻는다. 매년 방문객만 400만 명이 넘는다. 린은 당시 공모전에서 “전쟁 기념관은 군인들의 용맹함이나 전쟁의 결과를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인류의 비극을 참회하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건축물로 참혹한 역사를 가늠하기도 한다. 2005년 독일 베를린 한복판의 1만9,073㎡(약 5,770평) 부지에 들어선 ‘베를린 유대인 학살 추모비’는 오롯이 건축만으로 역사의 비극을 일깨운다. 광활한 부지에는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비석 2,711개가 격자 모양으로 줄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학살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의 수는 부지에 맞춰 설계됐다.
표식 없는 비석의 두께는 0.95m, 너비 2.38m로 동일하다. 하지만 높이가 다르다. 중앙으로 갈수록 지면이 낮아지면서 비석의 높이는 4m를 넘는다. 각 비석의 간격은 95㎝.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다. 사방에서 진입할 수 있으나 중앙으로 들어갈수록 방향을 잃고 헤맨다. 하늘조차 비석들에 가리워져 손바닥만하다. 글자 하나 없는 회색의 콘크리트 숲에서 방문객들은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역사의 순간을 떠올린다.
추모비를 설계한 유대인 출신의 건축 거장 피터 아이젠먼(89)은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추모비는 그 무력함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비석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고, 사람들은 비석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아이젠먼은 "이 공간이 꼭 '성스러운 장소'이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일상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비는 독일을 상징하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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