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주자 빅2'로 불리는 두 사람에겐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고발 사주 의혹 같은 대형 악재를 맞아도, 실언·실책으로 자질 시비가 일어도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겠지만, 이 같은 기현상엔 그늘도 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똘똘 뭉쳐 격돌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대선에서 정책·인물 경쟁이 변별력을 발휘할 공간이 지극히 좁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올해 초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을 앞지른 뒤 한 번도 민주당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경선 연기론자는 가짜 약장수"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 등 과격 발언이 '불안한 후보론'을 부추겼지만, 지지율은 내내 굳건하다. 지난달 불거진 대장동 의혹은 “대장동과 비교하면 LH 사태는 애들 소꿉장난”(박용진 의원)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대형 악재이지만, 이 지사는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 대선 출마선언을 하자마자 장모의 법정구속, ‘도리도리’ ‘쩍벌’로 대표되는 태도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주 120시간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게 해줘야 한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등 여러 차례 실언을 했지만, 지지율 여파는 제한적이었다. 지난달엔 윤 전 총장이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남용한 것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고발 사주 의혹, 검찰 조직을 동원해 장모 변호 문건 등을 만들게 했다는 의혹이 잇따랐지만 중·장년층, 대구·경북 등 보수 심장부에서 그의 대세론은 탄탄하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이 순항하는 것은 각자의 지지층이 이들에게 바라는 우선 순위가 도덕성이나 품격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사에겐 성과를 내는 시원한 리더십을, 윤 전 총장에겐 문재인 정부를 때리는 강한 리더십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기행과 돌출 발언을 일삼고 스캔들도 많았지만 지지율이 내내 높았다”며 “지지자들이 도덕성보다는 (저소득층 백인 남성의 화풀이 등) 희망의 대리 실현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2007년 대선에서 갖은 도덕성 논란을 뚫고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 지지층이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건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보수·진보 갈등의 골이 더없이 깊게 파인 결과이기도 하다. 인물이나 정책을 따지기보다는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탈환이냐'만 따지는 선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거 지형에서 지상 과제는 '상대방 죽이기'일 수밖에 없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대선후보'가 누가 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 진영을 이길 수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여야 지지층이 뭉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민주당 지지자들은 윤 전 총장의 허물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 지사의 허물만 보고 있으니 악재에도 지지율이 끄떡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치 상황에 염증을 느끼는 무당층과 중도층이 안착할 제3의 대안 주자도 마땅치 않다. 이재묵 교수는 “안철수, 유승민이라는 대안이 있었던 2017년 대선과 달리, 이번엔 제3지대 대선주자들에 대한 소식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내년 3월 9일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사실상 검찰과 법원이 선거를 좌우하는 ‘정치의 사법화’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준한 교수는 “이번 선거는 정책공약은 뒷전으로 밀리고 각 의혹에 대한 수사 진척 상황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이 ‘예선 지뢰밭’을 지나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여리박빙(如履薄氷)’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이미 노출된 약점들을 노리고 묻지 마 의혹 제기와 고소·고발에 정치적 자원을 집중하면서 역대급 네거티브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도가 난무하는, 매우 혼탁한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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