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250~300㎞ 달리면서 60만~80만 원 매출을 올렸는데, 지금은 요소수가 부족해 서울 시내만 총 100㎞ 이내로 돌아서 20만~30만 원도 못 벌어요. 이렇게 해도 남아있는 양을 감안하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만 일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2년부터 7.5톤 트럭에 화물을 실어 나른 운전기사 전모(45)씨는 막막합니다. 20년 동안 화물 운전하면서 처음 겪는 '요소수' 대란에 뾰족한 수가 없어서죠. 그는 "어제(3일) 다른 화물트럭 기사가 경부고속도로를 800㎞ 왕복하면서 주유소 16군데를 들렀지만, 요소수를 한 방울도 못 넣을 정도"라며 "그렇다고 중고시장에서 10만 원 넘게 폭등한 요소수를 사다 쓰면 비용이 더 나와 차라리 쉬는 게 낫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요소수를 해외직구하려도 해도 주문이 밀려 대기하다 취소되거나 50~60일 걸린다고 해 동종업계 지인들 중에는 아예 쉬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그 역시 "마땅한 대책은 없어서 요소수가 동나 쉬게 되면 언제 다시 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계 위협'을 호소했습니다.
말 그대로 '요소수 대란'입니다.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 차량이 배출하는 까만 매연인 질소산화물(NOx)을, 배출가스저감장치(SCR 선택적촉매환원법)에서 질소와 물로 분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2015년 1월부터 판매된 디젤차에는 SCR장치를 반드시 장착해야 해 요소수도 없어서는 안 되는데, 얼마 전까지 10리터에 1만 원 안팎이면 살 수 있었던 요소수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겁니다. SCR 장착 차량은 요소수가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출력이 제한된다고 해요. 그래서 조만간 화물차 운송이 멈춰 물류대란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원료인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업계 설명 등을 종합하면, '대략' 국내 수입 요소 중 차량용은 10%, 공업용은 30%, 나머지 60%는 농업용이라고 합니다. 전체 수입량의 60%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특히 요소수를 만드는 데 쓰이는 요소 대부분(올해 1~9월 기준 97%)은 중국에서 수입해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최근 중국이 갑자기 그동안 별도의 검역 검사 없이 수출이 가능했던 요소 등 29개 비료 품목을 대상으로 수출 전 검사를 의무화하면서 지난달 15일부터 국내에 요소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의존도가 높았던 터라 중국 수출 규제의 불똥이 튄 것이죠.
그렇다면 "국내에서 요소를 생산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요소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국내에는 없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요소를 생산했던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이 2011년 요소 생산공장을 닫았기 때문이에요.
삼성정밀화학이 요소 생산을 중단한 이후 공시한 2011년 반기보고서를 보면, 공장을 멈추기 직전인 2010년까지만 해도 요소를 15만여 톤이나 자체 생산했습니다. 차량용 요소를 비롯한 공업용 요소의 경우 삼성정밀화학의 시장점유율(회사 자체 집계)은 55%였고, 나머지 45%는 수입업체를 통해 조달했다고 나오네요. 당시에도 국내 요소의 절반가량을 외국에 의존했었는데, 국내 마지막 생산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전량 수입하는 신세가 된 겁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요소 총 55만 톤 가운데 차량용이 8만 톤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물량이었네요. 물론 결과론적 얘기지만요.
10년 전 왜 사업을 철수했을까 궁금해집니다. 당시 회사 측 자료를 보면 "원가경쟁력 및 수요 상황을 고려해 요소, DMF 등 경쟁력이 저하된 제품은 합리화 일환으로 지난 4월 25일 생산을 중단했다"(2011년 반기보고서)고 나와 있네요. 외국과의 경쟁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비싼 납사(나프타)에서 요소를 생산해 온 국내 업체와 달리 경쟁사는 석탄(중국)이나 천연가스(중동·동남아 등)에서 값싸게 요소를 만들어 경쟁력 자체가 없었다"며 "삼성의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64년 동양 최대 비료공장(한국비료공업)을 지어 생산해왔던 터라 회사(삼성)의 상징과도 같고, 국가 기간산업이어서 적자여도 최대한 마지막까지 유지했지만, 그마저도 적자가 너무 심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정밀화학은 요소 사업을 접기 3년 전쯤인 2008년부터 요소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배기가스 환경규제 유로5로 인해 화물차에 필요한 요소수 시장 규모가 막 커지던 때였는데요. "적자인 요소 사업을 언제 그만둘지 몰라도 요소를 워낙 오래 다뤄 온 데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액체 화합물을 정밀하게 관리해 온 노하우 덕분에, 불순물을 얼마나 균일하게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요소수 사업의 특성과 딱 맞아떨어져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업계 관계자)이라고 합니다.
대안으로 나오고 있는 수출 다변화와 공업용 요소를 차량용 요소로 전환하는 건 현실적인 대안이 맞을까요?
먼저 수출 다변화는 시간이 걸려 당장의 품귀현상 해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처럼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이용해 요소를 생산하는데 유럽과 맞닿은 서쪽의 발틱해에 생산공장이 있어 내륙을 거쳐 해상으로 오면 수송에 2~3개월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또, 인도네시아도 자국의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수출을 제한했고, 중동은 대부분 비료용 요소를 만든다고 하네요.
정부가 제시한 공업용 요소의 차량용 전환도 쉽지 않습니다. 공업용 요소는 불순물이 많아서, 순도 높은 요소를 사용해야 하는 요소수를 만들기 부적합하기 때문이죠.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입할 때도 차량용에 맞게끔 순도 등의 스펙(spec)을 주문한다"며 "그렇게(공업용을 차량용으로 전환) 할 거면 제조사 입장에선 진작에 더 싼 공업용 요소를 사다 썼지, 뭐하러 비싸고 순도 높은 차량용 요소를 사다 썼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농업용 요소도 포름알데히드가 코팅돼 있어 차량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합니다. 요소도 다 같은 요소가 아니네요.
일부에서는 요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시 마련해 자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지만, 석탄만 공급되면 해결되는 일이라 많은 비용을 들여 굳이 생산라인을 만들 이유가 없고, 만든다 하더라도 2~3년은 걸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요소' 수급난처럼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였던 값싸고 흔했던 원료가 희토류나 반도체 소자처럼 '무기화'할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특히나 10년전 마지막 요소 공장이 문 닫을 당시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에 따라 친환경 차량이 늘고, 그에 따라 요소수 수요도 많아질 것이라 예상 가능했음에도, 이를 정부나 업계가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요소는 값이 굉장히 싼 제품이라 솔직히 이렇게 파장이 큰 소중한 존재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업계 관계자)란 말도 들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은 요소수 문제지만, 한 국가에 60, 70% 이상 의존도가 높은 경우에는 언제든지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정부가 냉정하게 분석해 한 국가와의 의존도가 높으면 수입 다변화나 중요한 제품이라면 전략물자화해 일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한다든지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고 조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요소수 완제품 수입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김필수 교수는 "가격이 높지만, 외국에 완제품도 많다"며 "필요하면 절차를 간소화해 완제품이라도 수입해서 물류대란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은 요소수 사재기 단속과 한시적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리터짜리 요소수가 중고거래에서만 10만 원 이상의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점이 수상한 만큼 정부가 단속해 정상 유통시키고, 요소수 없이도 트럭을 운행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배출가스 관련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거죠.
25톤 트레일러를 운행해온 한 화물트럭 운전기사는 "정부가 이 지경까지 나뒀다가 지금에 와서 각 부처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은 사실 바닥에 있는 저희한테는 와닿지 않는다"며 "규제를 바꿔서라도 운행할 수 있게, 저희들 시각(입장)에서 (현실적 해결방안을) 봐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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