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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생생과학

체온 조절 못하는 나비는 어떻게 북극에 살까?

입력
2022-04-19 04:30
나비는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여름철 최고기온이 평균 8~10도인 극지방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나비는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여름철 최고기온이 평균 8~10도인 극지방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뜨거운 여름, 검은색 테이프를 눈 밑에 붙이고 운동장으로 나온 야구선수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공중에 뜬 플라이볼을 처리하는 데 걸림돌인 강한 햇빛에 대한 대응으로, 빛을 흡수하는 성질의 검정색 아이패치를 부착해 눈에 직접 들어오는 빛을 최대한 줄이려는 목적이다. 볕이 뜨거운 여름, 검은색 옷 대신 밝은 계열 색상의 옷을 입는 것도 이런 원리를 생활 속에 접목시킨 결과다. 반대로 어두운 색은 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추운 계절에 즐겨 입는다.

그런데 북극에선 이런 상식에 의문이 생긴다. 위도 약 83도의 북그린란드는 육지에서 갈 수 있는 지구 최북단 지점. 여름이 매우 짧고 평균 최고기온이 섭씨 8~10도에, 8월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두꺼운 지방층을 이용해 체온을 유지하는 북극곰 등 포유류뿐 아니라 나비와 파리 등 곤충이 살고 있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곤충이 서식한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수수께끼였다. 특히 나비가 밝은 색을 띤 경우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어두운 색을 띠어야 충분한 열을 흡수할 수 있는데, 북극에서 생존해야 할 나비에게 최적의 색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극에서 수천 년간 생존한 나비의 비결은 무엇일까?

비밀은 빛의 파장에 있었다!

빛은 파장에 따라 가시광선과 적외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눈에 보이는 파장범위를 가진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부른다. 눈에 색채로 인식되는 파장의 범위를 ‘스펙트럼’이라고 하는데 380~700㎚ 범위의 파장을 가진 빛이 우리 눈에 보인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380㎚ 이하는 자외선과 X선 등이고,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700㎚ 이상의 범위에는 적외선과 라디오에 사용되는 열선이 있다.

목포대-극지연구소 공동연구진은 2019년 북극에 사는 나비의 생존법을 연구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게 됐다. “나비의 표면색이 우리 눈에는 밝아 보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근적외선 파장의 열을 흡수할 수 있게끔 진화해 빛을 조금만 반사할 수 있다면 추운 지역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다른 연구자들도 유사한 의문을 품었지만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은 나비의 수수께끼를 완벽히 풀지는 못했다. 그동안의 연구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색의 영역인 ‘가시광선’ 범위에서 이뤄졌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범위까지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적외선 파장대에서 생물이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이 적외선 중 가시광선에 비교적 가까운 범위인 근적외선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자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가시광선에선 포착되지 않던 반사도가 근적외선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북극곰도 있는데, 왜 나비로 연구했나

그렇다면 왜 연구대상은 나비가 됐을까? 만약 고위도 지역에만 서식하는 북극곰을 실험 대상으로 정한다면, 북극곰에게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으로 판명날 수 있어 일반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렵다. 반면 다양한 서식지에 분포한 여러 종(種)에게서 일관된 패턴이 나타난다면 실험의 결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환경에 따라 빛의 반사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식지 분포가 넓은 대상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밝은 색을 띠는 나비는 근적외선 필터로 보면 사실 태양열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어두운 색을 띠기도 한다. 왼쪽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 필터로 본 나비의 등면(위)과 배면(아래). 연구진 제공

우리 눈으로 볼 때 밝은 색을 띠는 나비는 근적외선 필터로 보면 사실 태양열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어두운 색을 띠기도 한다. 왼쪽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 필터로 본 나비의 등면(위)과 배면(아래). 연구진 제공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고위도 북극에 이르기까지 위도 34~70도에 넓게 분포해 서식하는 나비는 최적의 실험 대상이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박사는 “밝은 색의 나비가 고위도 지역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며 “저위도 지역인 적도에 사는 밝은 색의 나비와 비교해야 빛의 반사도를 대등하게 비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강창구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는 “연구 대상으로 나비가 좋은 점은 종이 다양하고, 표본이 잘 수집되어 있으며, 태양에너지를 체온조절에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빛의 반사도를 정밀하게 비교하기 위해 서식지역이 서로 다른 나비 343종의 표본을 수집해 실험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적외선 카메라에 포착된 나비 색

실험에는 특별한 카메라가 사용됐다. 일상에서 쓰는 카메라는 가시광선 영역만을 촬영한다. 그런데 이번 실험에선 나비의 표면색이 가시광선 바깥의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할 것이라는 가설이 전제됐기에,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 영역을 촬영해야 했다. 가시광선 필터는 400~700㎚를, 자외선 필터는 400㎚ 이하를, 적외선 필터는 700㎚ 이상을 촬영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카메라에 여러 파장대에 맞는 필터를 끼우면 가시광선과 자외선, 적외선 영역을 촬영할 수 있다”며 “적외선 필터를 끼워 나비를 촬영했더니 근적외선 영역의 색상이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나비 343종에서 같은 결과 나타나

연구팀이 이런 방식으로 343종의 나비 표본을 촬영한 결과, 근적외선이 나비의 체온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운 고위도 지역에 사는 나비일수록 표면의 반사도가 낮았다. 태양 에너지의 흡수량을 늘려서 체온을 높이기 위한 생존법인 셈이다. 반대로 더운 지역에서는 반사도를 높여서 체온을 낮추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눈에는 똑같이 밝게 보이는 곤충은 사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 파장의 빛을 통해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며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나비들이 극한 조건에서 적정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은 근적외선 영역에서의 빛 흡수량을 조절하는 데 있었다.

나비의 몸통과 날개 등 부위별로도 반사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나비의 근적외선 빛 흡수도는 혈액 순환과 비행을 위한 근육 등 핵심 기능이 몰려 있는 몸통부에서 생존에 유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추운 극지방 나비의 몸통은 대부분 근적외선 영역의 빛을 잘 흡수한 반면, 더운 지역의 나비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비의 표면색, 자동차 산업·건축물에도 활용 전망

나비의 생존전략은 향후 연구를 거쳐 우리 실생활에 더 많이 활용될 전망이다. 강 교수는 “동물에서 진화한 이러한 미세구조와 색채, 근적외선 영역의 빛 흡수도의 관계를 연구하면 건물이나 차량 등에서 색채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흡수되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방식의 온도조절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이나 건축물, 자동차의 표면 등 다양한 산업영역에서도 빛의 반사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박사도 “빛을 많이 흡수하는 검정색 자동차를 여름철 양지에 주차할 경우 차량 안에서 찜통 더위를 겪게 되는데,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검게 보여도 실제로는 빛을 반사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