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밤이었다. 한국 영화가 또 한번 세계 무대에서 역사를 썼다. 세계 최고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2개 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복수로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막을 내린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을 각각 품에 안았다. 칸 감독상은 2003년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 이후 2번째이다. 국내 남자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배우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성실하고 예의 바른 형사 해준(박해일)이 한 남자의 의문사를 조사하다 피해자의 아내이자 용의자인 서래(탕웨이)와 농밀한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필름 누아르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상 미학을 모색하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릴러와 로맨스가 정교한 세공술로 묘사된다.
박 감독은 수상자로 호명된 후 무대에 올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온 인류가 국경을 높이 올릴 때도 있었지만, 단일한 공포와 근심을 공유할 수 있었다”며 “영화와 극장에 손님이 끊어지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만큼 극장이라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 모두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 역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도,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고 믿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2004년 ‘올드 보이’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초청받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2009년엔 ‘박쥐’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16년엔 ‘아가씨’로 경쟁 부문을 다시 찾았으나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번 수상으로 본인이 지녔던 한국 영화인 최다 수상 기록을 바꿨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박 감독은 고전이나 원작이 있는 작품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며 “고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칸영화제에서 더욱 성과를 낼 만하다”고 분석했다.
송강호가 출연한 ‘브로커’는 현존 일본 최고 감독으로 꼽히는 고레에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강동원 이지은(가수 아이유) 이주영이 출연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몰래 빼돌려 불법 입양을 시키려는 일당과 아기의 엄마가 뜻하지 않게 여정을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송강호는 아기 불법 입양을 주선하는 브로커 상현을 연기했다. 그는 불어로 “메르시 보쿠(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너무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위대한 예술가 고레에다 감독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같이 온 사랑하는 가족에게 큰 선물이 된 것 같다. 이 트로피의 영광을, 영원한 사랑을 바친다”면서 “끝으로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고 했다.
폐막식에 앞서 한국 영화의 선전은 영화제 초반부터 감지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월드 스타가 된 배우 이정재는 연출 데뷔작인 ‘헌트’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눈길을 끌었다. ‘헤어질 결심’은 23일 공식 상영회 이후 호평이 이어졌다. 영화제 일일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가 매긴 평점에 따르면 3.2점을 기록해 경쟁 부문 진출작 22편 중 가장 높았다. ‘브로커’는 26일 공식 상영회에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뱅상 랭동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영화는 2003년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으며 칸영화제 첫 수상 기록을 세웠고, 2007년 전도연이 '밀양'으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으며 2010년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을 안았다. 2019년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날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영예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차지했다. 대형 유람선을 배경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비꼬며 권력의 부조리를 그렸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감독, '스타즈 앳 눈'의 클레어 드니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각본상은 '보이 프롬 헤븐'의 타리크 살레 감독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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