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에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부터라도 도로에 담배꽁초 버리지 말아야죠.
직장인 오모(26)씨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강남구청 사거리에는 점심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구청에서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여느 때처럼 정문 앞 건널목을 지나던 몇몇 시민들은 멈칫했다. 도로변이 아닌 건널목에 담배꽁초가 촘촘히 박힌 빗물받이가 놓여 있었기 때문. 바닥에는 '꽉 막힌 배수로가 홍수를 부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침수 피해 복구가 이뤄지고 있는 강남구청 앞 도로변에는 배수로에서 역류한 쓰레기와 낙엽 등이 수거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하수구를 막은 담배꽁초나 쓰레기는 장마나 태풍이 올 때마다 배수를 방해하는 원인으로 꾸준히 지적됐다. 이번 폭우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물에 잠긴 강남역에서 맨손으로 하수구의 음료 캔, 비닐봉지 등을 치운 '강남역 슈퍼맨'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종아리까지 차올랐던 빗물이 이 남성의 활약으로 눈 깜짝할 새 하수구로 빠지는 모습이 전해졌다.
이제석광고연구소와 청년 활동가들은 이 영상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제석 대표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쓰레기로 꽉 막힌 배수구가 너무 익숙해서인지 시민들이 캠페인인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고 씁쓸해했다. 이 대표 역시 8일 하수구를 막았던 이물질을 해결하니 도로에 차오르던 물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담배꽁초 문제로 앞집 주민이 배수로에 차량용 매트를 덮어놨고 폭우가 와 도로가 물에 잠긴 것. 그는 "하수도 용량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쓰레기나 꽁초 투기 문제 해결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캠페인 현장을 지나가던 박지예(11)양은 "담배꽁초가 홍수의 원인이 되는 건 학교에서 안 배워서 몰랐다"면서 신기해했다. 하지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 하는 건 안 배워도 알고 있다"며 "어른들이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사거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직장인 이모(44)씨는 "흡연구역이나 재떨이가 길에 많지 않아서 꽁초가 처치 곤란"이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그는 "(도로에) 버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일과 중에 잠깐 피우는 담배인데 꽁초를 어떻게 신경 써서 해결하나"라며 "차라리 재떨이를 더 만들어달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장인 오영주(26)씨는 "꽁초나 쓰레기를 버릴 때는 작은 것 같겠지만 그게 모여서 물난리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서 캠페인 취지에 공감했다. 그는 "침수된 신림동 반지하에서 사람을 구조하는 영상을 봤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그 사람은 살았지만 이번 폭우로 인명 피해가 큰데 배수로를 막는 쓰레기 문제에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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