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륙을 한바탕 휘젓고 미중 관계를 뒤흔든 중국 정찰풍선의 정체와 중국의 의도를 둘러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풍선이 알래스카에 잘못 도착했을 때 중국이 자폭장치로 이를 파괴하지 않은 이유, 풍선 처리를 위한 미중 물밑 교섭 과정에서 중국이 보였던 태도가 대표적 의문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 하이난성 정찰풍선 기지에서 풍선이 날아오른 것을 주목한 시점은 1월 말이었다. 이 풍선은 서태평양 미군 전진기지 괌과 하와이를 정찰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풍선은 바람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밀렸다. 결국 지난달 28일 괌에서 한참 북쪽인 알류샨 열도와 알래스카 상공 미국 영공에 도달했다. 미국 관리들은 NYT에 “미국 영공에 도착했을 때 풍선의 자폭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NYT는 “중국에서 풍선을 조종한 사람들이 그 풍선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폭장치를 작동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을 가능도 있다”라고 전했다. 미국의 정찰풍선 감지 능력을 시험하고 미국 본토 내 군사시설 등을 실제로 정찰하려는 게 중국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미국 외교당국이 나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일 오후 6시30분 워싱턴 국무부로 주미중국대사관 고위 외교관 주하이취안을 불러 공식 항의 조치를 취했다. “미국 측은 주 공사참사관에게 중국 정부가 풍선에 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놀란 듯이 보였다”라고 미국 관리는 전했다.
그로부터 24시간이 흐른 뒤 중국 외교부 관리는 베이징 주중미국대사관 측에 “풍선은 무해한 민간 장비이고 코스를 이탈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일 중국 정부는 공식 성명으로 유감을 표시했고, 블링컨 장관은 5일로 예정됐던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미국 관리들을 의아하게 한 것은 그 이후 중국 정찰풍선의 행로였다. NYT는 중국의 유감 표명과 블링컨 장관 방중 취소 후 풍선이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또 4일 오전에는 중국 관리가 미국 카운터파트에게 “풍선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미국 영공을 빠져나가기 위해 위해 속도를 올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풍선은 이날 오후 대서양 연안에 도달했고 미군은 F-22 전투기를 동원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에서 풍선을 격추했다.
미군은 초기 확인 결과 중국의 자폭장치가 손상되지 않았고, 탑재물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파용 뇌관도 풍선 잔해에서 확인했다고 NYT는 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추가 분석을 마치면 자폭장치가 고장이 났던 건지 확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관리들은 자폭장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NYT는 보도했다.
중국 측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풍선이 미 본토 상공에 있을 때 자폭장치로 터뜨릴 경우 인명 부상이나 기물 피해를 우려했을 수 있다. 또 중국이 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방식으로 땅에 착륙시킬 수 있었지만 이 경우 미국이 정찰 장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NYT는 “정찰풍선은 이미 수십 년 만에 최저점에 달한 두 국제사회 강대국이자 최대 경제 간 관계를 계속해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 CNN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정찰풍선 사태와 관련해 직접 연설하는 방안을 백악관이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상원에서도 하원에 이어 정찰풍선 규탄 결의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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