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에는 매일 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가격을 대폭 깎아 주기 때문이다. 할인 제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으로도 많이 팔린다. 얼마 전 기자도 5.5유로(약 7,860원)짜리 샐러드가 포함된 18유로(약 2만5,723원)어치 음식 꾸러미를 3.99유로(약 5,702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이러한 '땡처리'는 곧 사라질 전망이다. 브뤼셀 시 당국이 "2024년부터 대형 슈퍼마켓은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기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벨기에 언론 브뤼셀타임스 등에 따르면, 시 당국이 최근 발표한 법안은 면적 1,000㎡ 이상의 대형 슈퍼마켓에 적용된다. 물류 회사를 통해 유통기한 종료 24시간 전 음식을 수거한 뒤 자선 단체를 통해 나눠 준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현재는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유통업체가 할인 판매 또는 자체 기부하고 유통기한이 끝나면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복지를 담당하는 알랭 마롱 브뤼셀시 장관은 "브뤼셀에서만 식량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가 7만 명인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는 건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벨기에 전체로 보면 1인당 연간 345㎏의 음식이 버려진다.
푸드뱅크(개인·기업 등으로부터 식품을 기부받아 취약계층에 나눠 주는 단체)는 이러한 조치를 환영한다.
유럽 30개국 푸드뱅크 연합체인 유럽푸드뱅크연맹(FEBA)의 자크 반덴슈릭 회장은 최근 한국일보 화상 인터뷰에서 "식품 기부 의무화는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전체 품목 중 식품 비중이 높으니 소규모 매장으로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유통기한 임박 식품 수거, 분류, 분배가 24시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들어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브뤼셀 시민들도 반겼다. 주민 프리(15)는 "한쪽에선 음식을 버리고 다른 한쪽에선 음식을 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매업계는 피해를 우려한다. 유통기한이 몇 시간이라도 남아 있는 제품을 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벨기에 무역서비스연맹 코메오스는 "결과적으로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벨기에 언론 레코는 전했다. 반덴슈릭 회장 또한 "슈퍼마켓이 음식 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식품 폐기 비용이 1톤당 150유로(약 21만4,385원)라는 점을 들어 기부가 폐기보다 업체에도 이득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유럽에선 식품 기부를 강제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프랑스는 2016년부터 면적 400㎡ 이상인 슈퍼마켓이 1개 이상의 기부 단체와 계약을 체결해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기부하도록 하고 있다. 2018년부터 기부 음식을 관리하는 직원을 별도로 배정하도록 하고 2020년부터는 식품 기부 의무 대상을 구내식당 등으로 확대했다. 슈퍼마켓이 기부 의무를 어기면 매출액의 최대 0.1%를 벌금으로 물린다. 체코도 2019년 비슷한 법을 도입했다.
이러한 조치는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음식물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 맞물려서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1인당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2020년 대비 30%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 유럽 내 음식물 쓰레기는 5,900만 톤으로, 환산하면 1,320억 유로(약 188조6,438억 원)에 달한다. EU는 "음식물 쓰레기는 2억5,2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등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반덴슈릭 회장은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구호'라는 점에서 식품 기부 의무화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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