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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0.06.04 (목)

THE KOREA TIMES

뉴ː잼 (News Jam)

재미있고 달콤한 뉴스를 배달해 드립니다.

2020.04.01 뉴잼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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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0.4.1
뉴;잼
똑똑뉴구세요

“꼭 여성분들만 오셔야 합니다.”

어렵게 잡은 인터뷰 약속, 그런데 낯선 요청이 왔습니다. 취재진 모두 여성이여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래도 여성 취재진을 꾸려 그들을 만났습니다.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

들어는 보셨지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온 이들입니다. 리셋은 이른바 ‘N번방 사건’ 초기 트위터에서 ‘N번방’을 포함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폐해를 알리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신고할 수 있게끔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는데요. 이후 국회 청원 등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안 마련의 토대가 되는 자료집을 만들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도움을 주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경찰청 긴급 회의와 국회 간담회에 초청돼 자문 역할을 맡고 있죠.

‘리셋’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고발한다는 영어(Reporting Sexual Exploitation in Telegram)의 앞 글자를 따 ‘ReSET’이라고 줄였고요. 동시에 “강간문화로 잃어버린 디지털 공간의 여성 안전을 다시 세운다”는 뜻을 담았다고 해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이들은 그 어디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취재진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 리셋 여성 활동가 두 명을 만났을 때도 그들의 실명이나 나이, 실제 직업을 알 수 없었죠. 이날 함께한 활동가들끼리도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고 합니다. 밥 한끼, 차 한잔 함께 해보지 않은, 정말 일만 함께 하는 사람들인 거죠.

이날 인터뷰에서 활동가 한 명은 대O, 다른 한 명은 정O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왜 익명을 고집하는지, 왜 여성 취재진만을 원했는지 하나 둘 의문이 풀렸습니다.

프로젝트 리셋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대O(대) = “SNS에서 ‘신고 총공(디지털 성범죄를 신고하는 링크를 공유하며 함께 신고하는 캠페인)’을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가 리셋이 (활동가) 추가 모집을 한다고 해서 합류했습니다.”

정O(정) = “언론 보도에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알게 된 뒤 리셋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앞서 소라넷(불법 음란물 유포 사이트)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실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참고인으로 피해자를 도와준 경험도 있었죠. 그렇다고 생업과 리셋 활동이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에요.”

보수도 없잖아요. 왜 모인 거죠?

= “텔레그램에서 신고하고, 증거를 모으고, 피해자에게 알리고, 수사할 수 있게끔 하는 활동들은 혼자 할 때보다는 여럿이 할 때 효과가 좋습니다. 또 프로젝트 리셋은 처음에 모니터링과 신고뿐만 아니라 국회 입법 청원도 진행 중이었는데요.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같이 모인 것입니다.”

리셋의 역할,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 “처음엔 모니터링과 채증을 통해 피해자를 돕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최근엔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국회 긴급 간담회 또는 경찰청 사이버 성폭력 전담반 긴급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사실 리셋은 피해자 지원단체라거나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는 아니에요. 피해자가 특정될 경우 연락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피해자 지원 단체나 법적 절차를 알려주는 것이 주 업무 입니다.”

특별조사팀, 특별수사단을 여성으로 이뤄지도록 요구했다고 들었어요. 취재진도 전원 여성을 요청했는데 왜 그런 거죠?

= “2018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93.3%가 여성이에요. 그런데 같은 해 경찰청 사이버 성폭력 수사팀원 중 여성은 1,2명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고요. 여성 피해자들이 조사를 받을 때 느낄 부담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여성 경찰관이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 “오늘 인터뷰에 취재진을 여성으로 구성해달라고 한 이유는 리셋 활동가들의 신변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전에 남성들이 몰래 숨어 있다가 방해하고 현장을 어수선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성분들로 취재진을 구성해달라고 했습니다.”

= “텔레그램 성착취방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활동가들을 어떻게 해버려야 한다는 말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신변보호에 더 신경 쓰고 있는 이유죠.”

한설이PD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뭘까요.

= “이른바 ‘지인능욕’이라는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들이 있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 있지 않는 이상, 피해 사실조차 몰라요.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이 3자 고발을 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수사기관에서는 그냥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발 3자 고발을 활성화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 “디지털 성범죄가 밤낮을 가려서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매우 짧은 시간에 유포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고요. 스트리밍으로 유출하는 성착취물은 올라온 지 5분만에 사라지고요. 우리가 신고한 뒤 수사기관이 그 방을 찾기까지 24시간 안에 해결해야 해요. 그런데 어느 날은 피해자가 직접 가해 정황을 목격해서 경찰에 신고하고 리셋에도 연락을 줘서 우리가 결정적 증거를 모아 경찰에 연락했는데 ‘근무시간이 아니다. 월요일에 다시 연락 달라’ 더군요.”

디지털 성범죄가 다른 성범죄와 달리 피해자들이 유독 피해 사실을 알리기 부담스러워한다고요.

= “지난해 12월 발표된 서울시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첫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겪은 후 신고 등 대처를 한 경우는 7.4%에 그치고 있어요. 피해 사실이 알려질 까봐 걱정돼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피해자가 30.6%나 되죠. 결국 이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감내해야 할 사회적 위험이 크고 우리 사회에 피해자 통념이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거죠.”

한국일보

프로젝트 리셋 활동 과정에서 협박을 당하거나 어려움이 많다는데요.

= “트위터 공식 계정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이 일시 정지된 적이 있어요. 이게 불특정 다수의 신고 때문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리셋 활동을 막기 위해 똘똘 뭉쳤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넘쳐나는 디지털 성 착취 계정들은 멀쩡히 두고, 왜 리셋 계정을 정지시켰는지 플랫폼 회사 측에 묻고 싶네요.”

=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리셋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칭이죠. 디지털 성범죄자들도 리셋의 존재를 알고 눈 여겨 보고 있다는 것이죠.”

= “리셋은 절대 후원을 받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리셋의 계좌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제보가 옵니다. 만약 리셋 후원 계좌를 목격하신다면 그건 모두 사칭이니까 저희에게 제보를 부탁 드려요.”

리셋은 지난달 23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범죄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성범죄 근절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구속 수사 의무화 △피의자 디지털 기기 압수수색 △제3자 경찰 신고 접수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구속 수사 의무화가 디지털 성범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 “불법촬영물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건데요.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거나 절차 상 문제로 압수가 바로 이뤄지지 않으면 증거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 “텔레그램에서 디지털 성착취범들이 자랑하는 게 있어요.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성착취물 용량인데요. 보통 1테라바이트(TB)를 훌쩍 넘겨요. 구속 수사를 하면 그 증거물을 찾아내서 제대로 수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죠. 반면에 불구속 수사를 하면 어떻겠어요. 스마트폰 지우고, 하드 파손하면 끝이잖아요.”

한설이PD

이번 ‘N번방 사건’을 보면서도 범죄를 근절하려면 국제공조가 절실하겠다 싶던데요.

= “맞아요. 현재 국제 공조수사가 매우 느립니다. 페이스북 대상의 수사도 빨라야 2개월, 심지어 6개월을 끄는데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해야 한다고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2001년 마련된 이 협약에는 현재 7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협약 조항에 따라서 아이피(IP)나 데이터 발신지, 수신지 정보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텔레그램 서비스 제공자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런 데이터를 보전하고 있어달라고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거죠.”

그는 지난해 2월쯤 법무부에서 협약 가입을 논의하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후 진행 상황은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한설이PD

수많은 활동을 하자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 텐데요.

=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지난 2월 10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브리핑을 하게 된 일이 있었어요. 그때 필요한 200장 분량의 자료집을 4일만에 준비했는데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고 싶어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해 말한다는 생각에 본업을 잠시 미루고 팀원들 모두 잠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노력했지요.”

= “사실 이런 일을 전문 기관의 전문 인력이 아닌 평범한 우리가 떠맡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그래도 필요한 일이고, 피해자들에게 도움될 수 있고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디지털 성착취 현안 파악조차 못하고 법안을 심의했다고 하죠.

= “국민동의 국회청원이 생긴 것도 국민 의견을 반영한 법안을 입법하겠다는 뜻이잖아요. 우리도 회의를 생중계로 보다가 많이 허탈했어요. 리셋 측에선 성명문을 냈고, 심지어 회의에서 나온 몇몇 2차 가해성 발언에 대해선 유감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 “익명의 여성들이 모여 활동하는 단체여서 다른 익명의 여성들과도 연대하고 있어요. 지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해 시위하는 단체와도 연대하고 있고요. ‘여성의당’은 제1공약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공약을 세웠는데 우리의 활동 취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관련 내용만 저희가 협약을 맺었어요. 또 ‘화난 사람들(공동 소송 플랫폼)’에서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재정비 등을 추진 중인데 우리가 탄원서 제출하는 일을 맡았어요.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디지털 성범죄가 이 사건 하나 해결한다고 해서, 가해자 한 명 처벌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피해자들과 함께 정책 문제, 법률 문제 해결을 목표로 계속 활동 이어가야죠.”

한설이PD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피해자들에게 흔히 하는 말 중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게 있는데요. 의도는 알겠는데,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건 가해자거든요. 피해자들이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많은 분들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케이스 스터디

“우리도 한국 가고 싶습니다. 데려가 주세요.”

전쟁이나 기아 정치적 박해 등으로 갈 곳 잃은 난민들 얘기가 아닙니다. 해외 곳곳의 교민, 유학생, 관광객, 봉사활동가, 기업가 등 현지에 발이 묶인 사람들의 아우성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정부를 향한 SOS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전세기를 투입해서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건데요. 실제로 우리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가 코로나19로 봉쇄되자 세 차례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을 송환한 데 이어 이란, 페루에 잇따라 전세기를 파견했어요. 1일 아침에는 유럽에서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국민을 태우고 전세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세기 투입은 코로나19라는 이례적 상황 때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있는 사례는 아니에요. 과거에도 재해, 재난 등 위급 상황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몇 차례 전세기를 파견했습니다. 사실 국민 보호는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죠. 헌법 제 2조에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있어요. 국가가 전세기를 해외에 파견해 국민을 송환하는 건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30년 전, 걸프전의 포화 속으로… 전세기 투입의 시작

전세기 파견의 시작은 30년 전 걸프전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초창기에는 주로 전쟁터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국민들을 구해 오는 것이 전세기의 역할이었습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걸프전 때 현지에 전세기를 파견했습니다. 중동의 정세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불안해 지자 정부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그 해 8월엔 요르단으로, 걸프전이 시작된 이듬해인 1991년 1월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항공 전세기를 보내 이라크 교민 90명과 사우디아라비아 교민 등 400명을 귀국시켰어요.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화교를 학살하는 등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는 정부가 같은 해 5월 대한항공 전세기를 동원해 교민들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오기도 했어요.

민족 분쟁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났던 키르기스스탄에도 전세기가 급파된 적 있어요. 다만, 국내 송환을 위한 전세기는 아니었죠. 당시 정부는 남부 오쉬시에서 민족 간 분쟁이 빚어지자 이곳에 거주하던 전체 교민 85명중 74명을 전세기에 태워 수도 비슈케크으로 옮겼어요. 그 과정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해요. 교민들이 오쉬공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현지 대사관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무장경호를 요청했고 현지 당국의 지원 덕에 교민들은 조마조마해 하며 공항에 갔습니다.

전세기는 탔는데, 돈을 안 냈다고요?

카이로=연합뉴스

전세기 비용은 누가 내냐고요? 코로나19 전후로는 당연히 탑승객이 내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정부는 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어요. 정부는 리비아에서 분쟁이 계속 일어나 2011년과 2014년 두 번이나 전세기를 보냈어요. 2011년에는 이집트항공과 대한항공이 투입돼 모두 700명의 근로자들을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왔는데요. ‘늑장대응’이란 지적이 일었다고 해요.

그 이유가 다름아닌 비용 처리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 사태가 내전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자국민들을 피신시켰는데 우리나라는 비용 부담을 놓고 관련 부처 사이에 이견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겁니다. 당시엔 정부에 전세기 관련 예산이 없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담당 국장이 개인 자격으로 보증을 선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지급 보증액만 해도 5억6,000만원에 달해 하마터면 집 한 채를 고스란히 날릴 뻔 했다고 하죠.

진통 끝에 현지에 전세기를 파견해 한국인들을 무사히 데려오긴 했는데, 갈등은 끊이지 않았어요. 외교부가 임차 비용을 승객 수대로 나눠 1인당 750달러(약 91만원)가량을 탑승객들에게 부담하게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10명 중 2명 정도가 “돈 없다”며 항공료를 내지 않겠다고 한 거죠. 전세기 탑승객 중 일부가 비용 부담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한동안 개인이 돈을 내는 게 맞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어요. 1억 5,000만원에 달하는 미납액. 보증을 섰던 국토부 국장이 떠안을 뻔 했었다는 데요. 몇 달이 지나 이 문제는 해결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돈을 탑승객들이 냈는지, 누가 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어요.

지진에 화산까지…국민들이 있는데 비행기가 없다면 어디든 간다

인천공항=뉴시스

자연재해 때문에 전세기를 동원한 적도 있어요. 바로 2015년 4월 네팔에서 규모 7.8의 대지진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네팔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지진으로 인해 현지에서 발이 묶이자 정부가 전세기를 띄웠던 건데요. 사실 당시에는 여진이 계속되는 등 위급한 상황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어요. 현지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았던 데다, 네팔을 취항하는 국적기가 주 1,2회밖에 운항하지 않아 전세기를 띄우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고 해요.

코로나19 사태 이전 가장 최근에 전세기를 투입했던 건 유명 휴양지, 발리였습니다.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섬 북동쪽 아궁(Agung)산 화산이 분출하면서, 발리 공항이 폐쇄됐었죠. 귀국 예정이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갑작스런 공항 폐쇄로 때 아닌 공항 노숙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아시아나 전세기를 발리 인근 도시인 수라바야 공항에 투입했습니다. 발이 묶였던 한국인 여행객 266명은 12월 1일 아시아나 전세기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이날 귀국한 이들은 발리에서 300㎞ 떨어진 수라바야 공항까지 버스로 15시간 넘게 이동하는 ‘겹 고생’ 끝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탈북자 송환에 범죄자 송환까지

인천공항=서재훈 기자

위급 상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전세기가 활용된 적도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 탈북자 460여명이 베트남에 머물고 있어 2004년 7월 27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전세기 2편을 보냈다고 해요. 탈북자들이 종종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 머물렀는데, 탈북자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미처 이송되지 못한 탈북자들을 한꺼번에 이송하기 위해 전세기를 동원했어요. 이번 일로 북한과 잠시 관계가 껄끄러워졌다고 하죠.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맹비난했고, 우리나라를 향해서도 “남조선 당국의 반민족적 납치 테러 범죄”라고 비판했어요.

해외로 도피한 범죄 피의자 송환을 위해 전세기를 띄운 적도 있어요. 2017년 12월의 일인데요, 필리핀 현지에서 붙잡힌 범죄 피의자 47명을 송환하기 위해 한국 경찰 120명에 필리핀 현지 경찰과 이민청 수사관 등 모두 170명 넘게 투입됐다고 해요. 경찰이 전세기를 동원해 해외 도피 사범을 단체로 송환한 건 그것이 첫 사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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