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미르ㆍK스포츠 재단 설립과 관련, 대기업을 압박해 모금한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가 대기업 오너의 인사에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3일 MBN 보도에 따르면 2013년 말 청와대 핵심 수석비서관이 CJ그룹 고위 관계자와 통화를 하면서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도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청와대 수석은 CJ 관계자에게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이)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난다”며 “지금도 늦었을지 모른다”면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 청와대 수석은 “그럼 이게 VIP(대통령)의 말씀을 저한테 전하는 것이냐”고 묻는 CJ 관계자에게 “그렇다”고 말했다. CJ 관계자가 재차 “VIP의 뜻은 확실한 것이냐”고 묻자 청와대 수석은 “확실하다. 직접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로, 당시 이 회장이 횡령ㆍ배임ㆍ탈세 혐의로 구속 수감되자 동생을 대신해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함께 그룹 경영을 맡고 있었다. CJ 관계자는 “사실 확인 중”이라며 “이 파일이 어디서 어떻게 유출된 것인지, 통화한 사람이 청와대 수석과 CJ 직원이 맞는지 현재로선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미경 부회장이 2014년 9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2년 넘도록 해외에 머물고 있는 것이 청와대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고 이맹희 회장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해 8월 잠시 귀국했을 뿐 1주일 이상 국내에서 장기 체류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대선이 치러진 2012년 말 CJ그룹 계열사인 CJ E&M의 케이블채널 tvN은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이 때문에 청와대와의 관계가 불편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 등 대선 후보들을 신랄하게 풍자했었고, 이 부회장은 당시 CJ E&M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2014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한국의 밤’ 행사 때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가수 싸이 등과 함께 한류 전파의 주인공으로 집중 조명 받았는데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이 소외됐고,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CJ그룹은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해외로 간 것은 지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며 “외압 때문은 아니다”고 밝혔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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