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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록 사진은 반쪽만 보여주죠...영웅담이거나 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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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록 사진은 반쪽만 보여주죠...영웅담이거나 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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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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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대전 산내면에서 한국군 헌병과 경찰이 민간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이 사진은 2000년 공개 당시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적의 잔학성을 보여주기 위해 인민군에 의한 민간학살이 부각됐던 것과 달리 우리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각은 한국사회에 공식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1950년 7월 대전 산내면에서 한국군 헌병과 경찰이 민간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이 사진은 2000년 공개 당시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적의 잔학성을 보여주기 위해 인민군에 의한 민간학살이 부각됐던 것과 달리 우리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각은 한국사회에 공식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한국전쟁 당시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던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이나 '데일리워커'는 유엔군에 불리한 장면들을 자주 포착해 보도했다. 사진은 1950년 8월 위닝턴 데일리워커 기자가 보도한 ‘낭월 죽음의 계곡’이라는 제목의 기사. 강성현 교수는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의 사각'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한국전쟁 당시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던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이나 '데일리워커'는 유엔군에 불리한 장면들을 자주 포착해 보도했다. 사진은 1950년 8월 위닝턴 데일리워커 기자가 보도한 ‘낭월 죽음의 계곡’이라는 제목의 기사. 강성현 교수는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의 사각'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사진은 특정 시점의 현실을 시각(視覺)화해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다른 현실은 사각(死角)화해 보여주지 않는 역설적인 매체예요. 사진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아는 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최근 정근식 서울대 교수와 함께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을 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21일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사진은 재현의 역설을 갖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사진 생산자가 보여주고 싶은 현실”이라는 강 교수의 말은 즉 사진을 통해 본 현실이 어쩌면 ‘반쪽 짜리’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에 달린 캡션도 반드시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 속 현실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은 대단히 지엽적인 작업일 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의도와 별개로 흐를 가능성도 높다. 그가 책에서 사진을 “사회적 사실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근거”이면서 “특정한 시각에서 그것을 바라보도록 강제하는 이미지”라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사진의 왜곡은 한층 심해진다. “전선이 존재한다는 건 ‘우리’와 ‘그들’이 구분된다는 거죠. 우리가 전쟁에서 보고자 하는 건 당연히 ‘우리가 잘했다’는 것과 ‘저들이 잘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는 건 아군의 ‘영웅담’과 적군의 ‘만행’뿐이에요.” 한국전쟁을 다룬 수많은 사진전과 사진집이 인민군의 ‘양민 학살’을 부각시키며 잔학함을 고발해왔던 반면, 민간인 피해 상당수가 우리 군과 미군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축소한 것이 그의 말을 증명한다.

두 교수가 한국전쟁 사진에 역사사회학적 접근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대부분의 사진집이 이미 상정한 특정한 사실을 보완하는 부수적인 ‘이미지’로써 사진에 접근하는 것이 불만이었다”는 강 교수는 사진을 하나의 독립된 자료로 분석해 “구조적으로 역사를 보고자”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수만 장의 사진과 촬영자가 직접 작성해놓은 캡션을 일일이 정리했다. 빅데이터화된 사진들을 분석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캡션에 적힌 정보에 대한 추가 자료를 찾아보고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보며 해석은 점점 풍부해지고 온전해졌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촬영한 수만 장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앞에 선 강성현 교수. 강성현 제공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촬영한 수만 장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앞에 선 강성현 교수. 강성현 제공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미군 중령의 보고서. 최고 등급의 정보 가치를 매겨 상부에 올린 이 보고서에는 ‘한국정부의 최고위층에서 학살을 지시했고 이를 한국군 헌병과 경찰 등이 집행했다’는 내용과 함께 관련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물론 사진들은 기밀로 분류됐다. 강성현 교수는 "단순히 사진 자체만 놓고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관련 자료 등을 같이 봐야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미군 중령의 보고서. 최고 등급의 정보 가치를 매겨 상부에 올린 이 보고서에는 ‘한국정부의 최고위층에서 학살을 지시했고 이를 한국군 헌병과 경찰 등이 집행했다’는 내용과 함께 관련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물론 사진들은 기밀로 분류됐다. 강성현 교수는 "단순히 사진 자체만 놓고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관련 자료 등을 같이 봐야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출판문화원 제공

‘역사사회학’이란 대중적이지 않은 접근 방식이라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펴볼 수 있도록 “쉽게 써보려 했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한국전쟁의 기억은 곧 우리 정체성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대중서를 지향했다고 한다.

“‘우리’의 눈으로 시각화한 역사만 접한 집단의 정체성은 적을 상정하고 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하고 전쟁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지죠.” 강 교수는 아군의 자국민 학살 등을 배제하고 누락시키는 기존의 방식대로 한국전쟁을 파악하면 언제든 비극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책에서는 우리의 시각과 사각을 모두 점검해 ‘적이 나쁜 게 아니라 전쟁이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반전ㆍ평화ㆍ인권을 향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했다. “‘민낯’과도 다름없는 사각화된 역사를 마주하면 당황스럽고 치워버리고 싶겠죠. 그럼에도 성찰적으로 대면해야 뭔가 실마리가 보이지 않겠어요?”

전쟁사진 연구에 새로운 한 걸음을 뗐지만 강 교수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군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우리의 시각인 양 내면화해 온 미국의 시각을 점검했으니 이제 우리군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진짜’ 우리 시각을 점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의 사각이나 다름없는 적들의 시각을 분석하는 것도 반드시 진행해야 할 작업이며, 군 뿐만 아니라 민의 시각과 사각을 다루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과제다. “물론 접근이 어렵기는 하겠지만 동유럽 공산국가로 흘러간 북한과 중국 군속사진가들의 사진 등을 분석해 우리의 사각을 볼 수도 있어요.”

강 교수는 “우리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인 6월 25일을 기념하는 나라”라며 “이렇게 ‘적들이 있다’고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분단 상황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가 다양한 주체의 시각과 사각 분석을 통해 한국전쟁의 실체를 그려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사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그렇게 해야 역사를 온전하게 극복해 낼 수 있겠지요.”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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