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는 도무지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추워도 참아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12일, 광주의 한 일반고생 최민우(18)군은 등교하자마자 교실에서 책상을 빼 한기가 도는 복도에 자리를 잡았다. 두꺼운 외투와 담요로 무장하더니 꿋꿋하게 책을 폈다. 이미 대학에 붙은 수시합격생들에게 점령당한 교실은 더 이상 면학 분위기를 기대할만한 교실이 아니다. 최군은 “수능 점수가 필요 없는 친구들이 훨씬 많아 반마다 3~5명은 매일 복도로 향한다”고 했다.
수능을 앞둔 교실 풍경이 예전과 달라졌다. 정시전형보다 학교생활기록부 전반을 두고 평가하는 수시전형이 대세로 굳어져서다. 이런 현상은 수시전형에 주력하고 실제 합격자도 많은 일반고에서 두드러진다. 긴장은 온데간데없고 사력을 다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복도로 밀려나 괴로워하고 있다. 교실 옆 복도는 그나마 양반, 어쩔 수 없이 무단결석 기록을 남기거나 교사와 다투면서까지 ‘교실 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서울의 일반고생 이모(18)양 역시 이미 대학에 합격한 상태다. 그는 “조퇴 무단결석 지각이 최근 셀 수 없을 정도라 하교할 즈음 교실에 남은 애는 고작 몇 명 정도”라며 “불과 며칠 전까지 수능이 얼마 남은 지도 다들 몰랐다”고 말했다. 한 고3 수험생은 ‘10월 말 교실 분위기가 엉망이라 수능 전까지 조퇴하고 독서실에 가서 자습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임교사에게 말했다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연을 수능 수험생 커뮤니티 수능날만점시험지를휘날리자(수만휘)에 올렸다.
수능 준비 소수파를 위한 뚜렷한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시응시생 김혜지(18)양은 “교사들도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다 지쳐 포기한 것 같다”며 “수능이 간절한 친구들은 조퇴하거나 결석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지역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27) 교사는 “끝까지 수능을 준비하는 각 반 5~7명의 면학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시합격생을 따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2019학년도 대학입시 전형을 감안하면, 전체 대입 선발인원 2명 중 1명 가량(55%)은 수능 점수가 아예 없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기시험 등이 더 중요한 예체능계열 응시생과 낮은 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하는 수시합격생을 더하면 수능에 올인(all in)하는 학생은 그만큼 더 줄어든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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