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경찰서 박용증 경정
필리핀 경찰영사 경험 쓴 책 내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테러단체 소굴로 스스로 들어갈 땐 정말 무서웠죠.”
2015년 10월, 필리핀의 테러단체 ‘아부 사야프(Abu Sayyaf)’의 근거지인 작은 섬 홀로(Jolo)에 ‘홀로’ 들어갔다. 아들을 보러 필리핀에 왔다 무장 세력에 납치된 노인을 9개월 협상 끝에 빼내오기 위해서다. 그러나 ‘석방’이 약속된 장소엔 노인의 시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협상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듬해 아부 사야프는 동방자이언트호의 한국인 선장과 필리핀 선원을 납치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임해 이번엔 한 명 낙오 없이 세 달 만에 무사히 구출했다.
서울 강남경찰서 112종합상황실장 박용증(50) 경정에게 필리핀은 남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삶의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필리핀대한민국대사관 경찰영사로 근무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서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15일 ‘필리핀 경찰영사 사건수첩’이라는 책까지 냈다. 경찰영사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재한 각종 사건사고와 현지 교민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엮었다. 관통하는 주제는 ‘필리핀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법’ 정도 되겠다.
박 경정 말처럼 필리핀은 외국인에게 결코 만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산에는 산적이, 바다에는 해적이, 도심에는 부패경찰이 있다. 박 경정은 누명을 씌워 돈을 갈취하는 일명 셋업(Set-up)범죄를 특히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기 전 세관원이 여행가방에 몰래 실탄을 숨기거나, 현지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면서 자가용이나 집 내부에 마약을 숨겼다가 적발한 뒤 “범죄를 무마해 주겠다”고 돈을 뜯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여행객은 △공항에선 무조건 공항택시를 탈 것 △택시기사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 것 △과하게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돈을 과시하지 말 것 등이다. 그는 “한인 총기 피살 사고가 자주 조명되긴 하지만 갈등 관계의 한국인이 사주한 청부살인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부당고용 분쟁이나 현지 교민의 돈을 노린 범죄 등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의식주안(衣食住安)’이라는 나름의 신조어도 소개했다.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를 모두 안전과 결부해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는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야 안전할지 먼저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 책이 안전지침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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