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결과에 의아·충격·환호/“정의의 승리미국판 유전무죄” 반응 갈려/심슨 “배심원들에 감사·진범 꼭 찾겠다”/두 피해자 가족석에선 흐느낌·신음소리이토판사의 지시에 따라 법정서기가 일어섰다. 숨막히는 긴장감이 법정에 꽉 찼다. 짧은 정적이었다. 법정서기는 떨리는 음성으로 『낫 길티(무죄)』를 선언했다. 순간 피고 심슨은 안면 가득히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번쩍 쳐들고 배심원들을 향해 『생큐』라고 말했다. 심슨의 첫번째 부인 아들 제이슨(25)은 기쁨을 이기지 못한채 머리를 무릎에 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베일리변호사는 방청석으로 가 심슨의 첫부인 딸인 아르넬라의 손을 잡으며 기쁨의 키스를 나눴다.
피해자 가족석에서는 흐느낌과 신음소리가 연신 흘러나왔고 피살된 골드먼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오 하나님』하며 오열했다. 골드먼의 아버지는 『오늘 평결로 검사측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양심이 여론에 진 것』이라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세기의 재판은 이렇게 막을 내렸고 풀려난 심슨에게는 「추적자」라는 새 별칭이 따라다니게 됐다. 그가 남은 생을 다 바쳐 전부인 니콜을 죽인 진범을 찾아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평결이 나온 3일 상오 10시(한국시간 4일 새벽 2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학교에서도 수업을 중단하고 무죄를 알리는 TV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게 바로 정의』라며 환호하는 흑인 젊은이, 『돈만 있으면 법도 필요 없는가』라고 흥분하는 사람들. 지금 미국인들은 예상밖의 「심슨 승리」에 모두가 충격받은듯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환영과 실망으로 양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평결이 발표된뒤 재판정 바깥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던 1천여명의 심슨 지지자들은 「승리자 O J 」「미국만세」를 외치며 열광했으나 비슷한 시각 로드니킹 재판이 열렸던 백인거주지역 시미 밸리근처 「298J 카페」에선 백인들이 『금력과 편견에 사로잡힌 믿을 수 없는 재판』이라며 미국판 유전무죄를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신문들은 91년 걸프전 발발이래 처음으로 특별호외를 제작했고 인터넷에는 찬반양론이 쇄도했다. 뉴욕상품시장에서는 거래자들이 「O J」를 연호하는 바람에 10여분간 거래가 중단되기도했다.
◎클린턴도 잘못 예측한 듯/준비한 성명서 폐기 급히 재작성/“평결존중 희생자 가족위해 기도”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3일 심슨 사건의 무죄평결과 관련, 『배심원들의 평결은 존중돼야한다』며 『미국의 지성인과 시민들은 이번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 옆에 위치한 조그만 방에서 몇몇 보좌관들과 함께 TV를 통해 평결을 지켜보았다』면서 『심슨에 대한 무죄평결에 대해 클린턴대통령이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우울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평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폐기한 뒤 즉석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힌 성명서를 다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클린턴대통령도 평결결과를 잘못 예측하지 않았나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수석검사 마샤 클라크/살인사건 백과사전 명성 타격
이번 심슨사건의 검사측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여성수석검사 마샤 클라크(42)다. 심슨사건의 스타로 부상한 클라크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판례는 물론 각종 증거에 관련된 최신 과학정보등 모든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했다. 그는 또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언변으로 검사측의 논고를 이끌어 갔다.
그와 함께 팀워크를 이루었던 흑인검사 크리스토퍼 다든(38)은 이번 사건을 인종문제로 부각시키려는 변호인단에 맞서 싸웠다. 그는 이번 사건이 백인검사단 대 흑인피고및 흑인변호인단의 대결이라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해 검찰진영에 참여하게 됐다.
살인사건에 관한 한 패배를 모르던 클라크는 평결직후 기자회견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했으나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다른 동료검사들에 감사 하며 『이번 평결이 우리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념을 잃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실망감을 대신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무죄 끌어낸 꿈의 변호인단/코크란·샤피로 등 최고들 “집합”/불리하던 흐름 인종문제 연결 반전/하루 수임료만 만5천불 돈값 “톡톡”
심슨 재판이 무죄평결로 끝나면서 「환상의 팀」이라고 불린 심슨측 변호인단이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다.
최고의 흑인변호사로 심슨변호인단을 이끌었던 자니 코크란 수석변호사, 하버드대교수 앨런 더쇼위츠, 전략의 명수 프랜시스 리 베일리등이 환상의 팀 구성원이다. 이들 뒤에는 미법조계에서 「소송의 제왕」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로버트 샤피로가 버티고 있다. 경찰의 비행과 소수민족의 인권문제를 주로 맡았던 코크란은 어린이 성추행혐의를 받은 마이클 잭슨, 프로야구선수 대릴 스트로베리등 유명 스타들의 단골 변호사다.
그는 초반 심슨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사건의 흐름을 단숨에 반전시켜 「역시 코크란」이라는 법조계의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이번 재판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종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치정살인사건」을 흑백갈등과 인종차별문제로 몰아갔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이같은 인종카드는 1백%이상의 효과를 거둬 결국 심슨의 무죄평결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사설탐정까지 고용, 사건현장에서 피묻은 장갑을 발견한 LA경찰청형사 마크 퍼먼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해낸 그의 수완은 흥미진진한 법정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마크 퍼먼의 흑인비하발언을 담은 녹음테이프가 법정에서 공개될 때 카메라가 잡은 그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심슨드라마」의 하이라이트였다.
하루 수임료만 1만5천달러를 받고 있는 심슨 변호인단은 철저한 역할분담으로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들은 심슨혈흔이 주요증거물로 채택되자 DNA전문변호사도 팀에 합류시켜 대책을 논의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번 재판은 「돈으로 산 무죄판결」이라는 일부의 비난처럼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미국식 유전무죄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조희제 기자>조희제>
◎랜스 이토판사/“원만한 재판 진행”평 일본계
심슨사건을 주도한 인물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랜스 이토(45)판사.
일본이민 2세인 그는 지난해 7월 재판담당판사로 결정된 이후 복잡한 심슨사건을 시종일관 침착하고 원만하게 진행함으로써 재판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토판사는 배심원의 평결이 내려지자 배심원 개개인을 상대로 평결내용에 대해 재차 의사를 확인했다. 그는 이어 배심원들에게 『언론이 배심원 여러분들을 찾아다닐 것』이라며 『언론과 거래하는 것은 자유지만 최악의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10년동안 검사생활을 해온 이토판사는 87년 민주당원이면서도 공화당주지사에 의해 판사로 임명돼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91년에는 LA변호사협회로부터 「올해의 판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초임검사시절 만난 백인부인 마거릿 요크는 LA경찰에서 최고위직 여성경찰로 활동하고 있다. 이토판사는 이같은 아내의 위치때문에 LA경찰관 퍼먼의 인종차별적 언행이 문제가 되자 한때 재판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심슨사건 주요일지>
▲94년 6월12일=니콜 브라운과 로널드 골드먼 피살
▲6월17일=심슨,고속도로 도주끝 체포
▲6월30일=예비심리 시작
▲7월22일=랜스 이토판사에 재판 배당
▲95년 1월11일=배심원단 격리
▲1월24일=재판 개정
▲3월9일=LA경찰관 마크 퍼먼 증언
▲9월25일=검찰측 최종논고
▲9월27일=변호인단 최후변론
▲10월2일=배심원 평결협의 시작
▲10월3일=무죄평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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