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이란 말이 있다. 캐나다 출신의 진보적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만든 개념으로, 그가 2007년 출간한 책의 표제이기도 하다. 클라인 사용한 뜻은 '우파 이념주의자들이 큰 재난이나 위기를 맞아 우왕좌왕하는 국민들을 선동해 자기들이 원하는 체제로 사회를 이끌고가는 전략'이다. 일종의 부정적 '충격요법'으로 해석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20세기 후반 남미와 러시아 등에서 경제체제를 개혁한다며 민영화 규제철폐 복지삭감 등의 경제적 쇼크요법을 쏟아붓는 바람에 공공성의 축대가 무너진 것을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 일본의 대지진 재앙이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놓고 해석이 다양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이끄는 비관론은 일본의 재정적자가 GDP의 10%에 달하고 인구노령화가 심각해 복구를 위한 재정투입이 있어도 20년 이상 무기력증에 빠진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쪽이다. 국가부채가 GDP의 2배에 이른 최악의 시기에 재산상 피해만 2,350억달러(세계은행 추산)에 달하는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이 복구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미국국채를 매각할 경우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 반면 긍정론은 일본판 뉴딜이 펼쳐질 전화위복의 기회이자 디플레이션 망령을 내쫓는 묘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루비니의 우울한 전망이 쇼크 독트린을 만나면'이라는 글에서 세가지 희망 요인을 얘기한다. 첫째 전문가들은 그동안 "일본이 큰 위기를 겪어야 변화할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3ㆍ11 지진의 충격과 슬픔이 정관계의 개혁과 재계의 쇄신을 일깨우는 '쇼크'로 기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위기극복 과정에서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온 중일관계가 호전되고 일본 국민들이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라는 것이다.
■ 페섹은 1855년 '에도 대지진'이 막부의 종말을, 1923년 '관동 대지진'이 군국주의의 발호를, 1995년 '한신 대지진'이 전후 일본경제 부흥기의 종말을 예고했다는 긍ㆍ부정적 사례도 제시했다. 역사상 자연재난으로 무너진 선진경제는 없는 만큼 일본의 지도층이 올바른 리더십과 비전을 보여준다면 클라인의 의미와는 다른'쇼크 독트린'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다. 지금 세계는 일본 지진과 원전 위기로 생산사슬이 무너질 정도로 날ㆍ씨줄로 촘촘히 얽혀있다. 일본이 하루빨리 긍정적 경로를 찾았으면 좋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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