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호흡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막상 ‘단전이 뭐지?’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이가 드물다. 단전(丹田)을 한글로 풀면 ‘붉은 밭’이다. 즉, 아랫배에 있는 붉은 밭으로 바로 자궁(子宮)을 의미한다. 자궁을 한의학용어로 일명 적궁(赤宮), 혹은 단전(丹田)이라 부른다. 세상의 모든 밭은 음과 양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는 공간(田 : ━┃口 )이라 꽃이 피고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데, 사람 몸속의 밭에는 붉은 피가 가득하니 단전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남자에게는 단전이 없는 셈이지만 자궁이 있는 부위를 어림잡아 단전으로 친다.
가임기 여성은 풍부한 양의 혈액으로 ‘붉은 밭’을 비옥하게 가꾸면서 임신을 준비한다. 임신이 되지 않으면 밭을 갈아엎듯 자궁내막에 쌓인 피를 배출해버리고 다시 새로운 혈액을 보충하는데, 보름달과 그믐처럼 매달 반복되므로 월경(月經)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전의 활동이 왕성한 가임기 여성은 많은 혈액이 필요하고, 항상 빈혈(血不足)에 처해지기 쉽다. 거기에다 사리와 조금처럼 반복되는 월경이 순조롭지 못하면 월경불순(月候不調)으로 고통 받게 된다. 이런 생리적 특성에 가장 좋은 효능을 가진 약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당귀’를 꼽을 수 있다.
당귀는 미나리과식물로 맛이 달고 맵고 따뜻한 성질(甘辛溫)을 가지고 있다. 주작용은 보혈(補血), 활혈(活血), 안태(安胎)인데, 한마디로 부인과질환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다. 일설에 ‘집 떠난 남편이 부인에게 당연히 돌아온다’고 하여 약명을 當歸(당귀)라 불렀다는데, 효능 면에서 본다면 ‘혈액이 자궁으로 돌아오고 채워진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보혈약인 사물탕에서도 보혈의 주체는 당귀다. 아랫배가 차가워지거나 어혈이 생기면 혈액의 소통을 돕고(活血), 임신 초기에는 자궁에 혈액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태동불안을 없앤다. 당귀는 한마디로 가임기 여성 혈병(血病)의 성약(聖藥)이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젊은 여성들의 수족냉증이다. 말 그대로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지는데, 특히 젊은 여성에게 흔하다. 수족냉증은 왜 생길까? 체온은 생리적 항상성에 의해 일정하게 36.5도를 유지하는데, 전신 체온의 일정한 분포는 혈액이 담당한다. 그런데 인체 내부의 주요 장기에서 많은 양의 혈액을 요구하면 제일 먼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손발을 포기하게 된다. 즉 손발로 보내는 혈액의 공급량과 속도가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몸매 관리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자궁에서는 많은 양의 혈액을 요구하면서 배출시키니 손발이 희생되고 차가워지는 것이다. 당귀가 젊은 여성의 수족냉증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의 당귀가 유통되는데, 하나는 숭엄초(Angelica gigas)고 또 하나는 일당귀(Angelica acutiloba)다. 가을에 강렬한 보랏빛 꽃을 피우는 숭엄초는 조선 선조 때부터 토당귀, 참당귀라 부르며 당귀 대용으로 쓰기 시작했으나 단맛은 없고 맵고 쓰기만 해(辛苦溫) 학계에서는 보혈의 효능은 없다고 본다. 한편, 일당귀는 숭엄초와 달리 하얀 꽃이 핀다. 맛도 달고 맵고 따뜻하여(甘辛溫) 당귀 본래의 약효를 가지고 있다. 일당귀로 만든 당귀차는 맛이 달고 깊고 그윽한 향을 머금고 있다. 그러므로 당귀차를 고를 때는 반드시 원재료의 확인이 필요하다.
지금쯤 강원도 정선과 임계에서는 일당귀를 가래에 걸어 햇살과 바람으로 양건하고 수확하느라 농민들의 손길이 바쁘다.
허담 옴니허브 대표ㆍ한의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