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0만명이 넘게 방문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가 실종되거나 공격받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27일 가디언은 스페인 경찰이 혼자서 순례길에 나서는 것을 삼가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미국 애리조나 출신 여성 데니스 티엠(41)이 올 4월 5일 레온 주 북서부 지방의 아스토르가 마을에서 실종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경로 중 가장 인기 있는 ‘카미노 프랑세즈’를 홀로 여행하던 중이었다. 티엠이 실종된 지 6주가 지났지만 행방을 찾지 못해 가족과 친구들이 실종 지역 수색을 위한 자원봉사자까지 모집하고 자체 수색에 나설 계획이다.
순례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아틀란스 미디어는 지난주 아스토르가 지역 주민인 50대 여성이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쉼터 인근에서 조깅을 하다 괴한들에게 납치될 뻔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은 “얼굴을 가린 남성 두 명이 차에 탄 채 팔을 잡고 차 안으로 끌어당겼고, 이들을 간신히 뿌리치고 도망친 후 수풀에 숨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이번 납치 시도와 유사한 사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며 치안을 강화해달라고 요구했다.
홀로 걷는 여성 순례자는 각종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서 온 47세 여성 순례자는 엘 아세보에서 몰리나세카로 향하던 길에 산악 자전거를 탄 20대 남성이 그녀의 가슴을 계속해서 만지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온 순례자 바바라 베로나는 티엠이 실종됐던 아스토르가 근처를 걷던 중 한 남성이 차를 세운 후 내려서 음란행위를 해 서둘러 앞서가는 아일랜드 순례자 그룹과 합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처음에 자신의 성추행 경험을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렸으나, 티엠의 실종 후 순례자 안전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순례길 주변의 성추행 등 사건 소식이 알려지면서 숨겨졌던 과거의 사건들도 속속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올 4월 말 산티아고 순례길 커뮤니티 인터넷 게시판에는 잘못된 순례길 표식을 따라갔다가 괴한에게 공격을 받은 경험담이 등장했다. 자신을 독일에서 온 조시라고 밝힌 순례자는 아스토르가와 엘 간소 지역 사이에서 허위로 표시된 화살표 표시를 따라갔다가 주요 경로를 벗어났으며, 마스크를 쓴 괴한에게 전기총으로 공격 당했다가 간신히 도망쳤다고 밝혔다. 지역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 체포된 용의자가 있다고 공개했으나 법원 당국은 기소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각종 사건이 끊이지 않자 순례자들에게 혼자 여행하지 말라는 권고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 시장인 빅토리나 알론소는 “이것은 예방 차원일 뿐이며, 지금까지 접수된 사건들은 개별적이며 예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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