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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합법화'가 아니라 '비범죄화'다

입력
2015.08.1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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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제앰네스티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급하게 결정된 것도 아니다. 전세계 모든 회원들과 이 논쟁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정책협의 과정에 참여한 모든 그룹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들은 이 중요한 결정에 도달하도록 도와주었고, 이 분야에서 우리의 인권운동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지난 1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앰네스티 국제대의원총회의 결정 직후 살릴 셰티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결정인지 알 것이다. 앰네스티는 이날 결의안을 통과시켜 성노동자들이 착취 및 인신매매와 폭력으로부터 완전하고 평등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확실히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까지 면제시키는 방식으로 성매매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 등에 앞장서온 세계적인 인권단체의 결정에 이미 보도된 대로 각국 정부와 여성단체의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유심히 볼 대목이 있다. 우선 앰네스티가 ‘합법화’가 아니라 ‘비범죄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앰네스티의 설명은 이렇다. “성노동의 비범죄화는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을 해도 법을 어기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성노동자들은 더 이상 법의 바깥으로 내몰리는 삶을 살지 않고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만약 성노동이 합법화한다면 정부는 공식적으로 성노동을 규제하는 매우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합법화 이면에 또 다른 시스템이 생기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규제를 피해서 성노동자들이 성매매를 하고, 또 다시 처벌을 받게 된다. 성노동을 처벌하지 않으면 성노동자들은 노동환경에 대해 스스로 더 많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어 독립적으로 스스로 협력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합법화를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노동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런던 소호거리에서 지난 2013년 10월 9일 성노동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영국 런던 소호거리에서 지난 2013년 10월 9일 성노동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는 성노동자들과 논의를 진행했는데, 대다수 성노동자들은 비범죄화를 지지하지만 합법화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었다. 단순히 사법당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못된 합법화 모델이 도입이 될 경우 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인권침해에 노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범죄자 혹은 공범으로 다뤄지지 않아야 경찰의 공격적인 태도와 위협이 줄어들고, 경찰의 보호를 요구하고, 보호 받을 수 있다. 비범죄화는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고, 자유로운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국제앰네스티가 합법화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 만들어진다면 그 법이 성노동자의 인권을 증진시키고 국제인권법에 부합하기를 바라고 있다.”

왜 포주들을 보호하려는가라는 질문에 앰네스티는 “우리의 정책은 ‘포주(pimps)’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성노동자를 착취하고 유린하는 제3자는 우리가 제안하는 정책에 따라 여전히 처벌대상이 된다”고 답한다. 성매수자만 처벌하는 이른바 ‘노르딕 모델’에 왜 반대하는가라는 비난에는 “많은 성노동자들이 국제앰네스티에 구매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도록 구매자의 집으로 방문해 줄 것을 요구 받는다(그 만큼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미)고 말했다”며 “성노동은 노르딕 모델에서도 여전히 큰 낙인이 찍혀 있으며, 이 낙인으로 인해 차별 받고 소외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8월 12일 ‘국제앰네스티, 성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 채택’ Q&A 참조 ▶전문 보기)

앰네스티의 결정이 논란을 부르는 것은 해법에 대한 찬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주제 자체가 참으로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정답 없이 논쟁되어온 것이기 때문일 게다. 앰네스티가 앞으로 권고할 내용이 각국에서 순순히 채택될 리는 물론 없다. 지역마다 성문화가 다르고, 이 주제를 둘러싼 정서가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그 나라, 그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다만 앰네스티가 ‘성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 주제를 논의했고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을 깊이 새겨 봐야 한다.

개인적인 성매매와 상거래가 된 기업형 성매매를 구별해야 한다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포함해 관련 주제를 다룬 국내 칼럼 몇 편을 소개한다.

“국가가 하나나 여러 연인에게 친밀한 감정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해 주는 돈을 받는 여성을 기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나라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이고 공개된 개개인의 성적 서비스 교환은 윤리적으로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사생활을 보호 받아야 하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우리의 기본권은 브리튼(대학교수를 지냈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남편과 헤어진 뒤 자신의 집에서 친분이 있는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가 2006년 경찰에 매춘 혐의로 체포돼 재판 받기 직전 자살했다) 같은 사람을 보호해야만 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았고, 그의 행위는 공적인 의미를 갖지 않았다.”(뉴욕타임스 8월 10일자 ‘상거래가 아닌 성매매를 어떻게 할 것인가’▶영어 원문 보기)

“자유주의 사회 안에서는 누구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다. 극단의 자유주의자는 자신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문서에 서명할 자유가 개인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명천지에 어떤 자유주의 사회가 그런 자유를 개인에게 허용하려면 그 사회는 계약을 둘러싼 개인의 권리와 법적 정의를 그 이전에 잘 수립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어느 모로나 다 잘 보장하고,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를 잘 관장하는 법의 지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라면 나는 성매매 합법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 한국 사회는 취업, 승진에서의 차별이 여전하고 유리천장은 아직도 두껍다. 생계를 위해 성매매로 내몰리는 여성들에게 성매매도 또 하나의 직업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보장해주는 일보다 그에 앞서 여성들의 생계를 위한 다른 조건들을 철저히 챙겨보는 것이 순서다.”(여성신문 3월 31일자 여성논단 ‘내가 성매매 합법화를 반대하는 까닭’▶전문 보기)

“10여년 전 여성부나 현재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성매매 반대 입장의 주요 내용은, 당시 여성부의 표어대로 “성을 사고파는 것은 범죄입니다”다. 나는 이 문구에 늘 당황한다. 성매매가 범죄인 것은 성을 매매해서가 아니다. 성매매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다. 성(몸) 매매가 왜 불법인가? 누구나 노동과 임금을 교환해서 먹고산다. 남녀가 같은 일에 종사해도, 여성이 ‘더 파는 것’처럼 보이는 성차별이 있을 뿐이다. 손발, 머리 등 몸의 어느 부분을 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들은 ‘지식인’이고, 어떤 이들은 ‘노가다’로 분류된다. 거듭 강조하는 바, 성매매는 매매가 아니라 성별이 문제다.

너무 비대하고 괴이해서 국제사회에서도 특이한 사례인 한국의 성산업 규모까지 문제 삼을 능력은 없다. 다만 찬반 주장 이전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압도적으로 남녀로 나뉜 직업이 성매매 말고 또 있는가. ‘창녀’와 ‘창남’은 같은 지위의 단어인가. 같은 인구수와 역사를 갖고 있는가. 성매매 제도는 여성 전반을 성적 낙인 속에 가둘 수 있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다. 왜 이 직종은 자영업이 힘든가. 왜 인신매매가 흔한가. 왜 기술이나 지식, 근무 연수가 아니라 나이가 소득을 좌우하는가. 성매매는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남녀의 성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출발하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경향신문 4월 17일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한 성’▶전문 보기)

“어린 아이와 병든 아버지의 부양책임이 있는, 사춘기부터 성매매를 해와 그것 말고는 생계를 도모할 길이 막막한 25세 여성이 경찰의 함정단속을 피하려다 투신자살한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눈앞의 손님이 위장한 경찰임을 알게 된 여성은 옷 좀 갈아입고 나가겠다고 요청한 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이 이야기를 하면 자꾸 울먹이게 된다. 배운 것 없고 쇠약한 여성은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옳은가. 국가는 왜 복지라는 형태로 이 여성의 환란에 개입하지 않는가. 생계는 언제나 준엄하다. 그런데 이 준엄한 생계의 대책으로 성은 왜 여성에게만 이토록 유력한가.

여성 차별을 막아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성매매 여성을 그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양가집 규수의 정조는 홍등가 여자가 지켜준다’는 역겨운 속담이 버젓이 인용되기도 한다. 성은 개인 간의 합의에 따라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불평등한 성 시장의 구조 안에서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만큼이나 허황한, 신기루 같은 믿음일 뿐이다.”(한국일보 5월 1일자 36.5˚ ‘나쁜 남자, 줄리 아가씨, 성매매법’▶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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