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귀 자르고 최후엔 권총 자살
예술가ㆍ광인 이미지 모두 가졌지만
정작 죽음 과정은 알려진 바 없어
철없던 10代 총기 주인 증언서 시작
반증 제시해 타살 가능성까지 제기
신화 걷어 내 작품 자체에 주목 시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ㆍ최준영 옮김
민음사 발행ㆍ972쪽ㆍ4만5,000원
“내 안에 어떤 힘을 느낀다…내가 끄지 못할, 계속해서 타오르게 해야 할 불을 느낀다.”
빈센트 반 고흐. 예술가와 광인의 이미지를 이토록 가깝게 부착시킨 사람이 또 있을까. 광기를 불태워 예술의 원료로 삼았던 그의 삶은 그가 그린 그림만큼, 때론 그보다 더 강렬하게 후대에 각인됐다. 고갱과의 갈등 끝에 스스로 귀를 자른 사건과 삶의 마지막을 장식한 권총 자살의 합작으로 탄생한 ‘불행한 천재’의 후광이 어찌나 화려했던지, 그의 삶의 기록엔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반 고흐의 자살에 의문을 던지는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가 출간됐다. 미국 화가 잭슨 폴락의 평전 ‘잭슨 폴락: 미국의 전설’로 퓰리처상을 공동수상한 전기 전문 작가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15년을 공들인 결과물이다.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평전은 반 고흐가 남긴 수많은 글과 그림(유화는 900점, 서간은 2,000통에 이른다), 독서광으로서 읽어 치운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 유년시절부터 화랑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까지 스크랩했던 시대의 명화들, 가족과 친구, 동료와 나눈 정신적ㆍ물리적 교류를 낱낱이 다룬다. 그러나 독자의 관심은 한 가지, 저자의 집필 동력도 사실상 한 가지다. 반 고흐는 정말 자살했을까.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요성을 지녔고 차후에 악명을 불러일으킬 행위로서,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핀센트 판 호흐를 죽음으로 이끈 사건에 관해 알려진 바는 놀랍게도 거의 없다.”
저자들은 탐정으로 분해서 1890년 7월 27일 파리에서 30여㎞ 떨어진 오베르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이날 화구를 짊어지고 집에서 나간 반 고흐는 배에 총상을 입은 채 자신이 머물던 라보의 여관으로 돌아왔고 서른 시간쯤 후에 사망했다. 주목할 것은 총의 행방이다. 총기 자체가 흔하지 않던 19세기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그 총은 누구의 것이었으며, 어디로 사라졌을까. 분명한 사실은 반 고흐는 총기를 소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총기를 다룰 줄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르네 세크레탕이라는 남자의 증언에 주목한다. 1956년 반 고흐를 다룬 영화 ‘열정의 랩소디’ 개봉 당시 반 고흐의 지인을 자처하며 영화 내용을 바로 잡겠다고 나선 그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두이토와의 인터뷰에서 반 고흐와의 만남에 대해 자세하게 털어 놨다.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르네의 눈에 비친 반 고흐는 폐인에 가깝다. 르네와 친구들은 반고흐의 커피에 소금을 넣고 붓을 고춧가루에 문지르며 그가 분통을 터뜨릴 때마다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던 짓궂은 무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했던 르네는 여관주인 라보로부터 총을 사들인다. 제멋대로 작동하는 낡은 38구경 권총은 “아무리 그가 장난감처럼 다루었어도, 장난감이 아니었다”.
총의 주인이 밝혀지면서 저자들의 추리는 급물살을 탄다. 왜 총상이 머리가 아니라 배에 났는가, 왜 반 고흐는 메모를 비롯한 일체의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는가, 자살이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보지 않고 여관으로 걸어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며칠 전에 대량으로 구매한 물감과 사망 당일 짊어지고 나간 화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책의 가설은 다소 위험하다. 르네는 자신이 반 고흐를 죽이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르네가 사건 당일 반 고흐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한 사람도 없다. 저자들은 소년 르네가 직접 방아쇠를 당겼든, 아니면 반 고흐에게 총을 건넸든 간에 자신이 소지한 총기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자살로 완성된 ‘반 고흐 신화’의 빈틈을 들춤으로써 이들은 ‘불행한 천재’ 프레임으로부터 화가를 구출하고 그의 작품과 그것이 시대에 미친 영향으로 대중의 눈을 돌리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관심은 늘 하나 ‘자살인가 타살인가’이고, 저자들은 이 수다에 흥미진진한 태도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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