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5㎞ 떨어진 곳서 강제노역
경찰 탐문 수사로 사건 드러나
“죽은 줄로 알았는데… 꿈 같아”
집을 나간 뒤 남의 축사에서 강제노역을 해 온 40대 지적장애인이 19년 만에 가족을 찾았다.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가진 고모(47)씨가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14일 늦은 밤.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맞은 어머니(77)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날 모자는 손을 꼭 잡은 채 잠이 들었다. 고씨의 사촌 형(63)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촌동생이 돌아와 꿈만 같다”고 말했다.
고씨를 찾았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들도 달려와 기쁨을 함께 나눴다. 주민들은 고씨를 찾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늦게나마 김씨의 칠순 잔치를 열어주기로 했다.
고씨가 마을에서 사라진 것은 19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누나(51)는 고씨가 사라진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고씨가 집을 나간 뒤 3,4년 동안은 천안에 있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명절이면 집에 왔었는데 1997년쯤부터 나타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이 때부터 그는 청주시 오창읍의 한 축사에서 강제 노역을 하기 시작했다. 축사에 딸린 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했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축사는 집에서 15km떨어져 있다. 차로 20분이면 닿는 거리다. 축사 주인이 외출하면 가끔 마을에 내려오는 그를 주민들은 ‘만득이’라고 불렀다.
고씨의 강제 노역은 경찰의 탐문 수사로 드러났다. 고씨는 지난 1일 오후 9시쯤 축사 인근의 한 공장 건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가 경비업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고씨의 말이 어눌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마을 주민 탐문 수사를 통해 무임금 노역 정황을 포착했다. ‘만득이’의 신원이 고씨라는 사실도 이 때 확인됐다.
경찰은 심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는 고씨의 안정을 위해 어머니와 누나가 함께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그를 인계했다.
경찰은 고씨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 축사 주인 김모(68)씨 부부를 장애인복지법·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고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지만 일을 강제로 시킨 적은 없다”고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경찰은 고씨가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대로 사회복지사 입회 하에 축사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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