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다. 수박, 참외 등 여름 과일은 더위와 갈증을 한 순간에 날려보내는 ‘여름사냥꾼’이다. 하지만 건강에 좋다고 생각되는 무공해 여름 과일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몸 안의 칼륨 배설 능력에 장애가 있는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는 독배다.
칼륨 섭취로 여름 난다?
여름에 쉬 피로하고, 무기력해지면 흔히 ‘여름을 탄다’고 한다. 칼륨이 우리 몸에 부족하면 이 같은 증상이 생긴다. 따라서 여름을 건강하게 나려면 칼륨 섭취가 필수적이다. 특히 칼륨이 많은 과일이나 채소는 여름을 활기차게 보내는 기본적인 먹을 거리다.
하지만 만성 콩팥병 환자, 특히 콩팥 기능이 많이 망가져 제 역할을 못하는 환자에게 과일, 채소의 과다한 섭취는 생명을 앗아가는 독이 될 수 있다. 칼륨이 많이 든 과일로는 수박, 바나나, 키위, 딸기 등이다. 칼륨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 과일은 포도, 오렌지, 사과 등이다. 칼륨 함량이 높은 채소는 버섯, 호박, 미역, 시금치, 쑥, 부추, 상추 등이다. 칼륨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 채소는 가지, 당근, 배추, 콩나물, 오이, 깻잎 등이다.
이상호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만성 콩팥병 환자는 콩팥을 통해 배출되는 칼륨 배설능력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칼륨 함량이 많은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으면 혈청의 칼륨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심장의 부정맥까지 생기고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현대인의 30% 이상은 비타민D가 부족하다. 비타민D는 햇볕을 쬐어 몸 안에서 자연히 합성되도록 하는 게 좋다. 하루 15~20분 정도 야외활동을 하면 우리 몸에 필요로 하는 비타민D가 충분히 만들어진다.
콩팥은 비타민D 전구체를 체내에서 활성화하는 일을 맡은 장기다. 따라서 콩팥 기능이 떨어지는 콩팥병 환자들은 비타민D 전구체를 제대로 활성화하지 못해 부족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그 결과 병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콩팥병 환자가 더운 여름이라도 체력 저하를 막고 비타민D 생성을 돕기 위해 일정 시간 햇볕을 쬐는 야외활동을 꼭 해야 하는 이유다.
소변 보는 양만큼 물을 마셔라
한국인은 식사 때를 제외하고 하루 평균 1리터 정도의 물을 마신다. 여기에는 청량음료와 커피 등에 든 물도 포함된다. 따라서 식사 때 수분섭취량까지 합쳐도 하루 수분 섭취량은 2리터를 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이 물을 마셔도 문제되지 않는다. 600만 명 정도 되는 콩팥병 환자도 문제가 별로 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중 투석(透析) 치료를 받는 5만여 명을 비롯한 만성 콩팥병 환자 15만 명은 물을 너무 마시면 안 된다. 콩팥 기능이 30% 이하로 떨어져 있어 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면 콩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이 교수는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이나 나트륨, 칼륨 등 전해질 조절능력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만성 콩팥병 환자의 수분 섭취 권고지침은 ‘소변을 보는 양만큼만 물을 마셔라’다. 단 소변 색깔이 진한 갈색일 때는 소변이 농축돼 있다는 뜻이므로 물을 충분히 마셔 희석해야 한다. 반면 옅은 갈색이나 노란색을 띨 때는 물을 적절히 마시고 있다는 뜻이므로 물을 더 마실 필요가 없다.
김성권 서울K내과 원장(전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은 “콩팥병 환자도 한국인 하루 평균 수분 섭취량(1리터) 수준을 지키면 좋다”며 “물론 야외활동을 해 땀을 많이 흘렸다면 물을 더 마셔야 한다”고 했다.
다만 옥수수 수염으로 만든 옥수수수염차는 만성 콩팥병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되도록 삼가야 한다. 김영훈 부산백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옥수수수염차가 만성 콩팥병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만성 콩팥병 환자를 옥수수수염차를 되도록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옥수수에는 칼륨이 다량 함유돼 있고, 소변을 원활히 배출하게 해 부기를 빼는 등 강력한 이뇨 작용이 있지만 콩팥 기능이 약한 환자에게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만성 콩팥병 환자가 주의해야 할 수칙>
1. 칼륨 함량이 높은 과일ㆍ채소를 삼가라.
<과일 100g 당 칼륨량>
2. 과일의 경우 통조림 과일을, 채소는 데쳐서 먹어라.
-과일ㆍ채소를 물이 담가 놓거나 데치면 칼륨이 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과일을 통조림으로 만들면 생과일보다 칼륨 함량이 적다. 채소는 가급적 잘게 썰어 재료의 10배 정도의 따뜻한 물에 2시간 이상 담갔다 새 물에 몇 번 헹궈 사용하면 칼륨을 30~50% 줄일 수 있다.
3. 주식은 흰밥으로 먹으라.
-곡류 중 흰쌀보다 검정쌀, 현미, 보리, 옥수수, 찹쌀 등에 칼륨이 많다. 도정이 덜 된 곡류에도 칼륨이 많다. 노란 콩에 검정 콩보다 칼륨이 월등이 많다. 녹두, 팥에도 칼륨이 많고, 우유에는 두유보다 칼륨이 훨씬 많다.
4. 조리 시 저나트륨 소금은 피하라.
-저염 소금이나 저염 간장에는 나트륨보다 칼륨이 많다.
5. 물을 한 번에 많이 마시지 마라.
-갑자기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증이 생길 수 있다. 운동 전에 미리 물을 마시고 운동 중 10~15분마다 120~150㎖ 정도 물을 섭취하는 게 좋다.
6. 이온음료와 탄산음료로 갈증 풀지 마라.
-탄산음료는 장내 흡수가 잘 안돼 갈증 해소에 도움되지 않고 오히려 위 팽만감과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이온음료에는 많은 양의 칼륨이 포함돼 있어 고칼륨혈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