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내걸었다. 충청권 표심 공략용이란 건 부정할 순 없었지만 수도권 중심의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의지와 판단이 더 컸다. 노 전 대통령은 입지를 선정하고,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마련하는 등 사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의지는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절됐다. 청와대와 국회가 후속 대안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행정도시) 건설에 합의했지만, 청와대와 모든 중앙행정기관 등을 이전하려던 행정수도 계획은 반쪽으로 축소됐다.
2007년 착공한 행정도시는 중앙행정기관 이전이 마무리되고 2단계 건설로 접어들며 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충청권 표를 구하기 위한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원안+α’를 약속했지만 정작 수정안을 꺼내 들거나 사실상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 사이 행정도시가 행정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명실상부한 행정중심도시로 성장한 세종시는 애초 계획됐던 ‘행정수도 완성’을 대선 주자들에게 요구했고, 대부분 이를 공약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지난 5.9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종시는 그 동안 여러 당위성을 내세우며 중앙부처와 정치권에 요구해 온 ‘세종시=행정수도’ 목표를 이룰 적기와 왔다며 잔뜩 고무돼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국민의 뜻을 물어 행정수도 개헌을 추진하고,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개헌이 필요한 만큼 우선 세종시를 실질적인 행정중심도시로 완성시키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국회 분원을 설치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행정자치부, 여성가족부까지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이런 작업이 가시화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통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전환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복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자신의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달 19일 청와대에서 가진 첫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세종시 완성을 위해 국회 분원 설치 등을 우선 검토하자고 밝혔다. 원내대표들은 각 정당이 대선 기간 대부분 비슷한 입장과 약속을 했던 만큼 문 대통령의 이 제안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는 심의위원회를 꾸리고 국회분원 설치를 위한 논의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심의위원회에선 의원회관을 포함한 분원의 규모와 설치 시기,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종시는 정부가 국회분원을 신호탄으로 쏘아 올리며 본격화한 행정수도 완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시가 최우선 순위를 둔 것은 헌법에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명시하는 개헌이다. 시는 이를 위해 차기 헌법학회장인 숭실대 산학협력단 고문현 교수를 통해 ‘행정수도 지위 확보를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시는 연구결과를 국회 개헌특위와 새 정부에 제시하고,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열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시는 세종시가 행정수도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세종청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도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사안은 헌법에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도 필요한 사안인 만큼 국회분원은 물론, 청와대 제2집무실 설치를 우선 추진할 요량이다. 국회분원은 외교ㆍ안보ㆍ국방 관련 상임위를 제외한 모든 상임위를 운영하고, 국회사무처와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의원회관도 설치하자고 시는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공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연내에 이전 방안 수립, 설계비 확보 등 구체적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는 수도권에 잔류한 미래부와 행자부, 여성가족부, 각종 위원회 등의 세종시 이전을 위한 관련법 개정과 이전 고시도 요청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정치권과 소통의 폭을 부쩍 넓히며, 행정수도 완성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달 26일 박주선 국회 부의장과 우윤근 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이춘석 사무총장을 연이어 만나 국회 분원의 조속한 설치와 세종시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한 민간 차원의 활동도 활발하다. 212개 시민단체와 지역 정당 등이 뜻을 모은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는 최근 세종시 행정도수 개헌 T/F팀과 간담회를 열어 개헌 국면에 함께 대비키로 했다. 대책위는 앞으로 충청권 대책위 결성, 충청권 국회의원과 협조한 전국적 공조, 전국단위 행정수도 지지 서명운동, 국회의장ㆍ국회 개헌특위 간담회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기업들도 후원금을 선뜻 내놓는 등 대책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세종시의 행정수도 완성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라며 “현 정부에서 행정수도가 완성될 수 있도록 시와 적극 협조해 전국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활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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