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 주려 흘려놓은 타인의 꽁초
수백m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꽁초가…
교도소서 알게 된 세 명의 남자
전원주택을 범행 장소로 선택
복면 쓰고 침입해 폭행ㆍ협박
현장엔 엉뚱한 담배꽁초만
단서 없이 지지부진하던 수사
수사 공조 후 모인 자료 분석하자
DNA 특정된 하나의 꽁초 발견
2012년 5월 13일 경남 진주교도소 앞. 줄담배를 피워대던 강정구(49·가명)씨가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곤 인기척이 있는 정문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고생 많았데이.” “고생은 무신. 한두 번이가.” 응수하는 홍인태(49ㆍ가명)씨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돈 좀 뺏어보겠다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꼬박 4년 철창 신세를 졌던 홍씨가 마중 나온 강씨 손을 꼭 잡았다. “반갑데이.”
둘은 1998년 바로 이곳 진주교도소에서 연을 맺었다. 그렇게 엮인 교도소 담벼락 안 우정은 질기고 질겼다. 2000년 출소 뒤 둘은 금세 다시 뭉쳤다. 8년 뒤 홍씨가 다시 수감되는 날, 교도소 안에서 가장 먼저 반겨준 이도 강씨였다. 값나가는 고물이나 전선을 훔치는 상습절도범인 강씨는 2년6개월 징역형을 받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고?” 홍씨가 강씨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남성을 가리켰다. “저도 형님(강씨)하고 교도소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보다 한 살 아래, 지금은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손영화(48·가명)씨다. 그 또한 절도 혐의로 2007년 12월부터 3년간 진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강씨와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형님,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 나누시죠.” 손씨의 살가운 얼굴과 말투가 맘에 쏙 들었다.
교도소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은 이들의 대화는 잠시도 끊이지 않았다. “빵(교도소)에서 나간 담에는 뭐하고 지냈는가” “그 교도관 잘 있는가” 질문은 질문을 낳았고, 대답은 또 다른 대답으로 이어졌다.
한두 시간이 흘렀나. 왁자지껄하던 목소리가 순간 차분해졌다. “요즘 고급주택에 관심이 참 많은데.” 강씨가 주위를 휙 둘러본 뒤 조심스레 말했다. “한 번 들어보겠는가?” 강씨와 손씨는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2011년 9월부터 부산과 경남 일대 고급 전원주택을 골라 도둑질을 하고, 홍씨 출소 즈음엔 슬슬 범행 반경을 경기도로 넓혀가고 있었다. 강씨는 “벌써 반 년 넘게 8곳이나 털었는데, 경찰이 우릴 통 못 잡네”라고 했다. “용하네 용해.” 홍씨 눈이 점점 밝아졌다. “그래 뭐. 같이 해봅시다!“
무엇보다 고급 전원주택이 마음에 쏙 들었다. 대부분 벌 만큼 벌고 인생 정리 차원에서 한 번 쉬어보자는 노년층이 주인일 테고, 집 또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을 테니 은행을 자주 오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집에는 분명 금고가 있을 거고, 그 안에 현금이나 보석 같은 고가 귀중품이 보관돼 있을 공산이 크다. 홍씨 머리 속 셈이 빨라졌다. ‘가진 게 많지만 저항할 힘은 떨어진다. 범행을 저질러도 남들이 곧바로 알아채기 어려운 곳에 있다. 한 몫 크게 챙기기 좋으면서도, 경찰에 걸릴 가능성은 적다.’ 결론이 곧바로 내려졌다.
일행과 합류하기로 한 홍씨는 활동 범위를 더 확대하자는 제안을 먼저 했다. 강씨가 새 범행 대상으로 물색했던 경기 용인시와 성남시 일대에 머물지 말고 수도권 전체를 보자는 얘기였다.
셋은 의기투합 실행에 옮겼다. 인터넷포털 사이트에 ‘고급 전원주택’을 검색하면 탐나는 곳들도 무궁무진했다. 검색하고, 털고, 도망치고. 한 번 털 때마다 이전엔 쥐기 힘들던 ‘짭짤한’ 돈이 생기니 흥도 났다. 가끔 미수에 그칠 때도 있었지만, 6,000만원까지 하는 귀금속을 한 번에 손에 넣거나 3,000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손에 쥘 때도 있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을 때리고 협박해 돈을 뺏고, 전선 훔치던 옛날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빈집이 우선이었지만, 주인이 있다고 빈손으로 물러난 적은 없었다. 대나무 작대기, 과도, 낫 등 흉기를 들고 위협한 뒤 집에 있던 넥타이나 노끈으로 집주인 손발을 묶어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저항하면 살해 협박이나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골프채로 머리를 내리쳐 피해자를 중태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다.
홍씨 일당이 활개를 치는 동안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사건 현장엔 무엇보다 단서가 없었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만 했다. 스타킹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는 증언, 농업용 장화를 신은 것 같다는 진술뿐. 지문, 머리카락, 족적 등 흔적은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폐쇄회로(CC)TV도 큰 도움이 안 됐다. 경찰은 “찍혔다 싶으면 범인들이 아예 CCTV 본체를 들고 가버리는 통에 아무 것도 건질 게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몇 가치 담배꽁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 의뢰했지만, 주인은 모두 사건과 무관한 인물들로 밝혀졌다. “어딘가에서 담배를 주워다가 일부러 흘렸구나.” 경찰은 어이가 없었다.
이동경로 파악도 난제였다. 사건마다 범인 것으로 추정할 만한 ‘중복 차량(범행 장소를 오가며 두 차례 이상 노출된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홍씨는 뒷날 경찰에 이렇게 털어놨다. “비밀은 야산 노숙이다. 산과 가까운 전원주택 지형을 활용해 범행 전날 대포차로 목표지 인근으로 이동한다. 산에서 하루를 묵은 뒤 목표로 삼았던 집을 침입하는 식이었다.”
경찰은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2014년 3월 14일 경찰청 주관으로 수사공조회의를 열었다. 관할지역 관계 없이 머리를 모아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였다. 전국에 걸친 전원주택 연쇄절도 사건. 이 때까지 홍씨 일당이 쓸고 지나간 곳으로 경찰이 파악한 것만 3년간 38곳이었다.
수사 공조가 이뤄지자 사건 자료가 전국 각지 경찰서로 공유됐다. 수십 건 발생 사건과 초동 수사 자료가 이곳 저곳에서 다시 검토되기 시작했다. 서울 광진경찰서 김태욱 강력1팀장도 바짝 촉을 세웠다. 최근 광진구 등에서 비슷한 수법의 주택 절도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었다.
2013년 6월 부산 기장군, 같은 해 9월 성남 수정구, 이듬해 1월 경남 진주시 전원주택 빈집털이 사건 자료가 김 팀장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세 곳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와 채취된 유전자(DNA). “세 곳 DNA가 공교롭게 동일한 사람이더군요. 그런데 알리바이가 확실해요. 누군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그 사람이 피운 꽁초를 주워다 각기 다른 현장에 뿌려놓은 거죠.” 일단 세 사건은 동일범 짓이라는 얘기였다.
뜻하지 않은 단서가 추가됐다. 수사기록을 뒤적이던 중 기장군 자료에서 DNA 주인이 특정된 또 하나의 꽁초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범행 현장과 수백m나 떨어진 야산에서 발견된 터라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은 참고인 조사까지 했지만 그의 말만 듣고 해당 DNA 주인은 범인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간 수많은 꽁초가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 팀장은 “자발적인 협조 없이 DNA 정보를 특정할 수 있다는 건 대상이 전과자라는 얘기니 혹시 범인이 아닐까 다시 의심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결정타는 목격자 등장이었다. 2014년 1월 용인시에서 미수에 그친 동일수법 사건이 있었는데, 동네 주민이 범인 얼굴을 목격했다는 게 자료에 남아 있었다. “사진을 들고 무턱대고 목격자를 찾아갔는데, 정확하게 DNA 주인 얼굴을 찍었다.” 그 DNA 주인이 바로 홍씨였다. 완전범죄를 위해 꽁초에 집착했으나 범행 현장과 멀리 떨어져있다는 안도에 실수로 흘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곧장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경남 김해시 한 원룸에서 홍씨를 붙잡았다. 2014년 11월, 3년간 전국을 누비던 빈집털이범 손목에 마침내 수갑이 채워졌다. 홍씨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범행을 강정구와 함께했다”고 술술 털어놨다. 강씨는 이미 몇 달 전 홀로 절도를 벌이다 붙잡혀 포항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공범 손씨는 부산에서 검거됐다. 범행 후 곤궁히 지냈던 둘과 달리 그는 큰 주택과 외제차를 보유하는 등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셋이 훔쳤어도, 부는 장물 판매를 맡았던 손씨에게 집중됐던 거죠.” 처음엔 공범에 대해 함구하던 두 사람은 공범 손씨가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경찰 말에 함께 한 범행 일체를 털어놨다. 상습특수강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2016년 5월 1심 재판에서 각 10년(홍인태) 8년(강정구) 7년(손영화)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김형준 기자 mediabo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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