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고바야시 세카이 지음ㆍ이자영 옮김
콤마 발행ㆍ252쪽ㆍ1만3,000원
2015년 9월 일본 도쿄의 헌책방거리 진보초(神保町)에 12개의 카운터석을 갖춘 작은 정식집이 문을 열었다. ‘미래식당’이라는 이름의 이곳에선 50분 동안 일하면 한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끼 알바’ 시스템이 있다. 밥 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받은 ‘한끼’를 식권으로 바꿔 벽에 붙여둔다. 무료 식권은 다른 사람이 떼서 사용할 수 있다. 음료 반입은 공짜. 대신 가지고 온 음료의 절반은 가게에 두고 가야 한다. 이 음료 역시 가게에 온 다른 사람이 마실 수 있다. 맞춤반찬 시스템도 있다. 900엔(약 9,000원)짜리 정식에 400엔을 추가하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에 한해 원하는 반찬을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햄버그스테이크 정식을 먹으면서 새콤한 반찬이 떠올랐다면 냉장고에 있는 톳으로 나물을 무쳐주는 식이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먹고 싶은 것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곳, 여기에 대해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는 곳. 고바야시 세카이씨가 미래식당을 차린 이유다. 고바야시씨는 도쿄공업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IBM과 쿡패드(레시피 검색 포털)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지독한 편식쟁이었다. 반찬을 가리는 수준이 아니라 점심으로 요구르트만 먹는다든가, 저녁으로 시리얼만 먹는 걸 몇 달이고 할 수 있는 독특한 입맛의 소유자다. 아마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고바야시씨는 그래도 함께 밥을 먹고 싶었다. 타인과 ‘함께’ 하면서도 ‘왜’ 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것. 그게 미래식당을 연 이유다.
“그런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해요?” ‘한끼 알바’라는 위험한 도전을 시작한 고바야시씨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다. 확실히 무모한 일이다. 매일 바뀌는 아르바이트생이 손을 안 씻는다면, 욕을 한다면, 마늘과 생강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고바야시씨는 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의 의미부터 다시 따진다. 일본 음식점 아르바이트생의 평균시급은 1,000엔(약 1만원). 반면 한끼 알바가 제공 받는 식사는 원가로 따지면 300엔(약 3,000원) 정도다. 고바야시씨의 입장은 누가 일해도 3,000원만큼의 도움은 된다는 것.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청각장애인에게 봉투에 젓가락 넣는 일을 준 경험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야 한다.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줘서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게 바로 한끼 알바의 사고방식이다.” 대신 ‘위생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식재료를 만질 수 없다’ 등의 규칙을 세워 청결을 관리한다.
예측불가라는 공포의 골짜기를 건너고 나면 거기엔 신세계가 있다. 50분 간 일한 아르바이트생은 자리에 앉아 고바야시씨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직원이 바로 손님이 되는 것이다.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의 상하관계에서 비롯되는 임금착복, 욕설, 성폭력 같은 문제가 낄 틈이 없다. 그 전에 이미 아르바이트생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식당 창업을 위해 한끼 알바로 일한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고 그냥 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자신의 한끼를 식권으로 바꿔 벽에 붙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다. 이 무료식권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고바야시씨는 매일 무료식권으로 밥을 먹는 손님으로 인해 시험에 빠지고 말았다. ‘힘들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무료식권으로 밥을 먹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의 결론은 미래식당을 찾는 이들이 자신의 불쌍함을 증명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불쌍한가를 묻는 작은 제스처라도 돈 없는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전면 개방이 낫다는 판단이다. 제 돈 두고 공짜밥을 먹는 사람들을 인내하는 일은 고바야시씨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다. “눈물겨운 스토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과 진실을 뛰어넘은 곳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저서다. 첫 책 ‘미래식당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식당을 열기 전 준비 과정, 이 책은 식당 문을 연 뒤 1년 여간 일어난 일이다. 그가 이토록 부지런히 말하는 이유는 역시나 ‘함께’ 하고 싶어서다. 미래식당과 비슷한 식당을 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는 각 장마다 ‘오픈소스’란 이름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써놓았다.
미래식당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장소지만, 조국의 무례함에 지친 이들에겐 차라리 하나의 픽션이다. 그 요원함을 저자 자신도 알고 있는지, 그는 수많은 단어 중 굳이 미래라는 말을 식당 이름으로 삼았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