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위안부 창설’ 주장에
청원자 처벌 요구하는 청원도
직접민주주의 부작용 우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국민청원 및 제안’ 가운데는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청원 등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청원이 적지 않다. 특히 정책적 차원을 넘어 입법부나 사법부의 영역을 침해하는 청원도 잇따르고 있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다만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했다.
청와대는 8월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국민청원’ 코너를 마련했다. 미 백악관 청원 사이트인 ‘위더피플’을 본보기로 삼았다. 특정 청원에 30일간 20만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가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원칙도 정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면서도 “기준보다 참여 인원이 적어도 관련 조치가 이뤄지면 이를 성실하고 상세하게 알려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촛불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갈등을 조장하는 청원이나 특정 성(性)ㆍ지역 등에 편향적인 청원도 적지 않게 올라오는 탓이다. 지난 16일 게시된 ‘군내 위안부 재창설’ 청원이 대표적으로 논란 끝에 삭제됐다. 지금은 ‘군내 위안부 재창설 청원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7만여명의 동의를 받아 ‘베스트 청원’에 오른 상태다.
국민청원 1호 답변을 이끌어 낸 ‘소년법 개정’ 청원은 특정 시기나 특정 계층ㆍ집단의 여론이 과대 반영된 사례로 꼽힌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보호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이 붙으면서 29만6,330명이 동의했다. 헌법적 가치나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청원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청와대는 고심 끝에 형량 강화보다 예방·교화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한 칸 혹은 두 칸 낮추면 해결된다’ 그건 착오”라고 지적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부작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제를 꼽기도 한다. 최 교수는 지난달 23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함께 한 합동강의에서 “‘소년범을 무겁게 처벌하라’, ‘여성도 군대 보내라’ 등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여론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건너뛰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청원제의 한계 또한 분명한 만큼 청와대가 제도 운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26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될 우려가 없지 않다”면서도 “국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확인하고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로 보완해 가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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