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철 열사의 서울대 선배 박종운(57)씨가 최근 서울 관악구에서 열린 ‘박종철 거리’ 선포식에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이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를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해 고문한 건 당시 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등으로 수배 중이던 박씨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였다.
서울 관악구청은 박 열사가 살았던 관악구 하숙집 일대(대학5길 9)를 ‘박종철 거리’로 지정하고 13일 오후 선포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유족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등 정치권 인사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 뜻밖의 인물인 박씨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행사장에 조용히 나타나 자리를 지키다가 떠났다고 한다. 김학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17일 통화에서 “선포식에서 박씨를 만나 가볍게 악수만 나눴다”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있다가 간 걸로 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관악구청 관계자도 “나중에 박씨가 참석했다는 얘기를 들어 알았다”며 “애초 내빈 명단에는 없었다”고 전했다. 박씨는 박종철 거리 선포식 다음날인 14일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박 열사 31주기 추도식에도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김 사무국장은 “박씨가 추도식에는 매년 참석해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박 열사의 서울대 선배이자 민주화운동 동지였다. 박 열사는 박씨의 행방을 찾으려는 경찰에 붙잡혀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같은 해 일어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박 열사가 목숨을 걸고 박씨의 소재를 숨겼지만, 박씨는 민주화운동 당시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해왔다. 특히 2000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후, 경기 부천 오정 지역구 국회의원 총선거에 3번 출마해 낙선했다. 자연스럽게 박 열사의 유족이나 과거 운동권 선ㆍ후배들과는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로 박씨를 둘러싼 관심도 높아졌다.
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최근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운이는 종철이를 생각하면 정치를 안 하든지,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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