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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20년]여성을 위한 ‘행복한 약’은 왜 실패했을까

입력
2018.02.03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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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로 개발됐던 애디, 3번 시도 끝에 美 FDA가 승인

최소 두 달 복용해야 효과… 현기증 유발 등 부작용 우려도

비아그라가 전 세계 남성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며 20년 동안 박수 갈채를 받아오는 사이, 왜 여성의 성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피 드럭(Happy drug)’은 없느냐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높았다.

여성을 위한 ‘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부터 세계 최초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미 스프라우트 사의 핑크색 알약 ‘애디(addyiㆍ성분명 플리반세린)’가 있다. 사실 ‘핑크 비아그라’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00년대 초다.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2002년 당시 여성의 성기능 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약이 개발되고 있다며, 파란색의 기존 비아그라와 대비되는 분홍색 비아그라가 같은 해를 대표하는 단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림 1스프라우트사의 핑크 비아그라 '애디'
그림 1스프라우트사의 핑크 비아그라 '애디'

애디는 세 번의 시도 끝에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삼수생’이다. 처음엔 베링거 인겔하임사가 항우울제로 개발했다.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우울증에는 효과가 없는 반면, 여성의 성욕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발견되면서 이 회사는 성욕감퇴장애(HSDD) 치료제로 만들어 FDA에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FDA는 2010년 6월 거부했다. 약효는 미미한데 우울ㆍ불안ㆍ피로감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베링거 인겔하임사는 이후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스프라우트가 넘겨받아 개발을 이어갔지만 2013년 같은 이유로 FDA의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애디의 임상 시험을 진행한 셰릴 킹스버스 박사는 성욕을 평가하는 기법을 수정했고, 이전보다 시험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발견했다. FDA는 2015년 8월 플리반세린을 최초의 여성용 성욕 증강제로 승인했고, 같은 해 10월부터 정식 판매에 들어갔다.

하지만 비아그라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시장으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전에 도리어 논란의 한복판에 서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무엇보다 애디가 ‘효능’을 내는 방식이 비아그라가 남성에 도움을 주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비아그라는 남성의 성기 주변에 혈액이 활발하게 움직이게 해서 성 기능 개선을 돕는다. 반면 애디는 감정 조절과 상황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끼쳐 성 기능 관련 호르몬을 조절하는 식이다. 충동자극 호르몬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늘리는 대신 성욕을 떨어뜨리는 세로토닌의 분비는 줄인다.

미 스프라우트사가 만든 여성용 성욕 저하 억제제 애디. /2018-01-24(한국일보)
미 스프라우트사가 만든 여성용 성욕 저하 억제제 애디. /2018-01-24(한국일보)

전문가들은 기본 원리 자체의 차이가 애디에는 치명적 단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성용 비아그라는 성관계 전 간단히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애디는 최소한 2개월 이상 하루 한 번 100㎎씩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애디는 체내에서 알코올과 결합하면 저혈압과 기절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복용 중에는 금주해야 한다. 또 피임제, 항진균제를 먹지 않아야 한다. 현기증 유발, 메스꺼움, 졸음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애디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같은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효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조사인 스프라우트가 FDA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애디를 먹은 여성의 성욕이 37% 증가했고, 한 달간 성적 만족 횟수도 평균 2.7회에서 복용 후 4.7회로 증가했다. 그러나 애디 반대자들은 비아그라는 복용 후 몸에 즉시 변화가 나타나지만 애디는 개인의 기분에 따라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애디를 승인해 준 FDA 자문위원단의 일부 위원도 “이 약의 효과는 보통이거나 미미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자문위원단은 고심 끝에 ‘찬성 18, 반대 6’으로 승인하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조건을 달았다.

비아그라는 먹는 즉시 남성의 몸에 변화를 일으켜 효과가 생기는 반면 핑크 비아그라 애디는 여성의 뇌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게티이미지
비아그라는 먹는 즉시 남성의 몸에 변화를 일으켜 효과가 생기는 반면 핑크 비아그라 애디는 여성의 뇌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게티이미지

황진철 대한비뇨기과의사회 대외협력이사는 성의 단계는 ‘욕구기-흥분기-해소기’로 나뉘고, 비아그라는 흥분기에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남성은 욕구가 없더라도 흥분(발기)만 되도 섹스를 합니다. 반면 여성은 흥분기부터가 아니라 욕구기부터 작용을 해야하기 때문에 효능을 입증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느끼는 감정, 주변 분위기 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성교육자 에밀리 나고스키 박사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2013년 미국 정신과학회가 ‘HSDD를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삭제하고 대신 여성 성적관심, 흥분장애(FSIAD)라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대체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 등장한 성적 반응 모델은 식욕처럼 성욕이 불쑥불쑥 등장하고, 성욕 충족을 위한 개인적 동기 부여(흥분)는 나중이라고 믿게 했지만, 상당수 여성은 성욕이 자연발생적 욕망이 아니라 에로틱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애디의 FDA 승인 자체가 의학적 배경보다는 여권 신장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애디를 지지하는 미국의 여성단체들은 당시 “비아그라는 개발 2년 만인 1998년 단번에 FDA 승인을 받았는데 애디는 계속 승인을 거부당하는 것은 여성의 성욕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성차별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스프라우트사는 두 번 승인 거부 이후 여성단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성욕 감퇴 장애를 겪는 여성의 이야기를 홍보하는 장외 여론전을 통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총력전을 폈고 이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상업적 성공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애디의 등장은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 고민하고 그 개선책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디의 FDA 승인 당시 비비안 루이스 자문위원단 위원장 대행은 “이 약의 개선 효과가 대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수준의 개선조차도 성적 욕구 저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 단체들도 “HSSD를 가진 여성들이 적어도 선택권을 갖게 됐다”고 환영했다.

핑크 비아그라 애디의 등장과 또 다른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은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 고민하고 그 개선책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점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핑크 비아그라 애디의 등장과 또 다른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은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 고민하고 그 개선책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점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제2의 애디의 등장도 기대되고 있다. 네덜란드 이모셔널 브레인사는 FSIAD 치료제 ‘리브리도’를 개발하고 있고, 영국의 오르리비드사는 ‘오르리비드’를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광동제약이 지난해 11월 미국 팰러틴테크놀로지스의 ‘브레멜라노타이드’의 국내 도입 계획을 알렸다. 현재 임상 3상을 마치고 올해 초 FDA에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예정대로라면 국내에는 2021년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브레멜라노타이드는 애디와 마찬가지로 HSDD 치료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애디가 세로토닌 수용체와 도파민에 작용하는 반면 브레멜라노타이드는 식욕 및 에너지 소비 조절에 연관된 ‘멜라노코르틴-4’ 수용체에 작용한다. 또 입으로 먹는 애디와 달리, 피하주사로 맞는 방식이다. 앞서 종근당이 2015년 11월 미 S1사의 ‘로렉시스’를 국내 독점 판매한다는 계약 소식을 전했다. 이 물질은 항우울제 치료에 쓰이는 부프로피온과 트라조돈의 복합체로, 초기 임상 결과 저성욕증 여성의 76%가 약물 복용 후 성욕이 증가했다는 게 S1사의 설명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여성의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금기 때문에 좀 늦어질 수 있지만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과거보다 커지면서 (핑크 비아그라) 성장성은 충분하다”라며 “얼마나 안전한 약이 나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고 내다봤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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