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
백가윤ㆍ강은주 공동대표
학살터 등 관련유적 소개하며
인권ㆍ평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
시민단체 새 수익모델도 만들어
“육지 사람이라 겁이 없어서 시작할 수 있었죠.”
‘본격 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제주도 출신처럼 말했다. 비영리단체 ‘기억하고 싶은 길-제주다크투어’의 백가윤(35) 공동대표 얘기다. 올해 1월 문을 연 이곳은 제주 4ㆍ3사건의 학살터, 주둔지, 비석 등 탐방 코스를 일반에 소개하고, 관련 유적을 기록해 국내외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유대인 대량 학살이 자행됐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이었던 일본 오키나와 등 대형 참사 현장을 방문해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여행인 ‘다크투어’의 한국형 모델인 셈이다. 유엔과 태국 인권단체 ‘포럼아시아’에서 활동했던 백 공동대표가 외국인 투어와 국제연대를 주로 담당하고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출신의 강은주(37) 공동대표가 홍보와 국내 투어를 맡는다.
최근 전화로 만난 두 사람은 “4ㆍ3을 알면 알수록 ‘어마어마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시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4ㆍ3은 제주도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명이 희생된 비극이지만, 동시에 7년 넘는 시간 동안 저항했던 민중항쟁의 역사이기도 해요. 하지만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공포가 뿌리 깊게 남아 4ㆍ3을 쉽게 이야기 하지 못했죠.”(강은주)
‘제주다크투어’로 의기투합하기 이전 두 사람은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했다. 백 공동대표는 “태국에서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피해자를 만나기보다 한 단계 건너 일을 하게 됐다. 현장에서 일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2012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평화군축센터 간사를 맡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딪친 “첫사랑 같은 현장”이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었고, 그곳에서 강 공동대표를 만났다. 입시학원 국어강사로 일했던 강 공동대표는 7년 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근 활동가가 되면서 제주 강정마을로 향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3개 주체가 있었는데 강정마을 주민, 제주도 내 조직, 전국 단위 조직이었어요. 참여연대가 전국대책회의 간사를 맡으며 제가 그 담당을 하게 된 거죠. 서울을 베이스캠프로 활동하고 갈등이 터질 때 마다 제주도로 향했죠.”(백가윤)
그렇게 2012년부터 6년간 해군기지 반대투쟁 때마다 만났던 두 사람은 시간이 날 때면 “포털사이트 지도에 없는” 4ㆍ3사건 유적지를 둘러봤다. 여행을 하면서, 기부 중심인 시민단체 재원 모델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백 공동대표는 “다크투어가 인권, 평화 교육의 또 다른 형식이자 시민단체의 새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는 실험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4ㆍ3 다크투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알음알음 비공개로 진행됐어요. 저희도 지역 활동가 선배들 도움 없이는 현장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보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강은주) ‘제주다크투어’가 여행과 유적지 기록, 기록을 대내외에 알리는 사업을 함께 구상한 이유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단체 설립에 나선 건 지난해다. 수십대 1의 경쟁을 뚫고 아름다운재단 인큐베이팅 사업의 지원 업체로 선정돼 지난해 10월부터 준비, 올해 1월 문을 열었다. 여행 코스는 해군기지 반대투쟁으로 알게 된 제주 지역 활동가들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조언을 받았다. 백 공동대표는 “여행사가 아니라서 다크투어를 통해 수익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후원 회원은 모집한다”고 말했다. 전화(064-805-0043)나 이메일(jejudarktours@gmail.com)로 인원과 여행 기간을 문의하면 일정과 예산을 짜주고, 해설사를 소개해준다. 외국인 관광객은 백 공동대표가 통역하거나 직접 해설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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